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부인 고(故) 이정화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 이틀동안 머물렀습니다. 각계 주요 인사들이 많이 찾았기 때문이죠. 저와 같은 취재 목적으로 현장을 찾은 기자들이 1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재계서열 2위 그룹의 상(喪)인 만큼 문상객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현대·기아차에선 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을 몽땅 빌렸더군요. 모두 7개 방을 빌린 겁니다.

문상 첫날엔 오후 12시부터 조문객을 받았는데, 이날 하룻동안 방명록에 기록된 조문객이 27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틀 째엔 3000명이 넘었지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조화가 500여 개 들어왔습니다. 8일 오후 4시까지만 조화를 받고 이후 들어온 꽃을 모두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나중엔 조화에 붙인 리본만 수거하더군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해 구본무 LG그룹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정·관·재계 주요 인사들이 빠짐없이 들렀습니다.



연예인 중에선 신동엽 씨와 이승철 씨가 문상을 왔더군요.

자동차 기자의 눈에는 주요 인사들이 타고 온 차량도 관심이었는데,주로 국산 대형 세단을 이용하더군요.

구형 및 신형 에쿠스가 대부분을 차지했고,체어맨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에쿠스 중에선 리무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주요 인사 중에선 마이크 아카몬 GM대우 사장이 베리타스를,장 마리 위르티제 사장이 SM7을 타고 왔을 뿐입니다.

간혹 메르세데스벤츠 등 수입차도 있었습니다. 벤츠의 경우 S500 AMG 모델이 많았고,렉서스 LS 460도 좀 있었습니다.

김윤옥 여사는 지난 달 생산된 현대차의 에쿠스 리무진 방탄차를 타고 왔더군요.



김승연 회장은 특이하게 고가의 마이바흐를 타고 등장했습니다.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쏟아내자 담배를 한 대 빼어물면서 가벼운 농담을 섞어 답변하더군요. 다른 인사들과 달리 빈소에서 술도 한 잔 걸쳤는데, 여유가 넘쳐 보였습니다.

빈소 앞을 지키다 시간이 생겨 조화들을 눈여겨 봤습니다. 일정한 규칙이 있더군요.

빈소 가장 안쪽에는 이명박 대통령,김형오 국회의장 등 3부요인의 조화가 놓였습니다. 빈소 입구 앞에는 삼성 LG SK 등 국내 대기업 그룹사의 조화를 가지런히 배치했더군요.

그 다음 순서로 국회의원 등 정치계 조화와 언론계 조화를 비슷한 위치로 놓았습니다.

그 다음엔 중견 기업 및 대학,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조화를 좀더 앞쪽에 배치했을 뿐,특별한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먼저 도착한 순서로 배치한 듯 했습니다.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꽃이 특히 많더군요.

은행에 손벌릴 일이 별로 없는 현대·기아차 입장을 반영하듯,금융회사의 조화도 뒤쪽으로 밀렸습니다.

8일만 해도 뒤쪽에 놓인 조화에만 리본을 2~3개씩 달았는데, 9일 보니 대부분의 조화가 그랬습니다. 넘치는 조화를 반송할 때 리본만 따로 떼어 붙인 겁니다.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와 브라질 현지 업체가 보내온 리본 등 해외에서 보낸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사업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뜻이겠지요.

재벌 상가(喪家)는 일반 상가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컸습니다.

우선 문상객들로부터 조의금을 일체 받지 않았습니다. 방명록 기록만 남기도록 했지요. 방명록을 쓰는 곳에 따로 명함통을 배치해 방문객 명함을 별도로 받았습니다.

그룹 임원들이 직접 나서 손님들을 정중하게 모였습니다. 따라서 장례식장 1층엔 의전을 담당하는 임직원 수십 여 명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지요.

문상객들의 태도도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사전에 '예고'를 하고 빈소를 찾았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복잡하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입니다. 따라서 기자들이 몇 시에 누가 올지를 미리 알 수 있었지요.

고 이정화 여사는 북한에 고향을 둔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여느 재벌가와 달리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자녀들에게 수시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들려줬다고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조재길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