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경기회복 과정에서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은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 도널드 존스턴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73)은 "경기부양책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일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났다. 3년 전까지 OECD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70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인터뷰 도중 수치를 확인할 때는 블랙베리로 구글에 접속하는 '디지털족'의 모습도 보여줬다. 존스턴 전 사무총장은 한국경제신문이 교육과학기술부 ·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공동으로 오는 11월3~5일 서울 그랜드워커힐에서 개최하는 '제4회 글로벌 인재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금융위기가 시장에 준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장에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를 '자본주의의 실패'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시장에 대한 규제,운영상의 실패로 봐야 한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등 시장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개인적인 욕심을 그간 우리가 너무 과소평가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정은 필요하다. "

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금융사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저것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만들면 안 된다. 2000년대 초 엔론을 비롯해 월드컴 등 여러 기업에서 회계부정 사건이 발생한 후 2002년 미국에서 강력한 회계감사법안인 '사베인스-옥슬리법'이 도입됐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 법은 기업에 굉장히 많은 부담을 지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재무담당자와 변호사,회계사 등을 다 갖추고 있는 삼성과 같은 큰 기업은 규제가 늘어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서류 하나를 더 작성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 과잉 규제를 피하면서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가 간결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아울러 신용평가사들이 보다 정밀하고 투명하게 각 회사를 평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세계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불확실한 부분도 남아 있다.

"그렇다. V자형 경기회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완만하게 점진적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데 동감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각국의 보호무역 경향이다. 미국이 '바이 아메리칸'을 들고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유럽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기침체를 빌미로 각국이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장벽을 쌓아올리는 것은 앞으로 경기회복세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각국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보호무역주의를 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미국의 재정적자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 상태는 경기회복에 큰 부담이 된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 자금을 파산 기업 지원 등에 쏟아넣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인 1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글로벌 불균형과 보호무역주의 두 가지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경기회복 속도를 결정하는 가늠쇠가 될 것이다. "

글로벌 불균형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주장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글로벌 불균형은 오랫동안 지속된 상태였다. 중국의 수출 주도 정책이나 외환보유액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미국의 금융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더 빠르게 소비를 늘리고,미국인들이 더 저축을 한다면 상태는 개선될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불균형이 교정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임기 내에 재정적자를 6000억달러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료보험,기후변화,금융위기 등 산적한 문제를 떠안고 있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짐이 많다. "

유럽의 경기회복은 어떻게 보나.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다른 국가들만큼 타격을 많이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업률이 너무 높다. 영국과 같이 규제가 미흡한 나라들은 당분간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시장에 많은 권한을 주는 경제체제는 호황기에는 좋지만 불경기에는 타격을 많이 입는 것이 단점이다. "

한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출구전략 실행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다. 경기회복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면서 과도한 유동성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무조건 세금을 줄이고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무조건 세금을 줄일 경우 개인들은 이를 소비에 사용하기보다는 기존의 저축을 늘리는 데 쓸 것이다. 줄어든 세금이 스위스 은행으로 갈지,부동산을 사는 데 쓰일지 알 수 없다. 해답은 일자리 창출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을 늘리고 은행의 대출 문턱이 낮아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단기적인 일자리는 큰 의미가 없다.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성장성이 있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이오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 창출이 될 수 있다. "

파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