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HSBC은행이 1천명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한 것과 관련,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했을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의사들의 비윤리적 행위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의사들 사이에서는 신종플루 발생 이후 이미 개인적 목적이나 해외출장 때 예방적 용도로 타미플루를 갖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HSBC은행 관계자는 이번 타미플루 비축물량에 대해 "건강검진기관인 KMI에서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국에서 1천명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했지만, 직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 얘기는 현행 의료법상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는데도 해당 의사가 이를 무시한 채 처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개원의사 A씨는 "해당 회사가 보험에 등재되기 이전의 타미플루를 일괄 구매하지 않은 이상 1천명분을 따로 구할 방법은 없다"면서 "아마도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처방전을 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개원의사 B씨는 "대량으로 타미플루를 처방하면 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가 불가피할 것을 알면서도 처방을 냈다면 건강검진기관과 회사 간에 특별한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조사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벌금과 보험삭감비용 등을 보전받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의료법에서는 불법적인 처방전 발급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과 의사 자격정지(2개월) 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번 일이 특정 회사의 사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양심 섞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학병원의 한 전문의는 "이미 상당수 의료진이 해외 출장 때 사용하기 위해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비상용으로 갖고 다닌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면서 "의사들 외에도 타미플루 등의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해놓은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료진의 경우 불가피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의료진이 신종플루에 감염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의료진이 국내외 출장 시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예방적 목적의 처방전 발행에 대해서는 국민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bi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