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인천지하철 노조위원장은 지난 11년의 노동조합 역사 속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로 지난 2003~2004년을 꼽는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직후다. 노사관계가 만신창이가 된 것은 물론 조합원 간 갈등도 극에 달했던 시기로 이 위원장은 회상했다. 정치현안이 생길 때마다 민주노총으로부터 투쟁 지침이 내려왔고 조합원들은 집회 현장에 동원됐다.

이 위원장은 각종 집회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순간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문제 사안에 대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렇지만 민주노총은 정부를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고 무조건적인 대립각을 세우다보니 정작 필요한 조합원들의 요구는 조합 정책에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회사와의 관계 악화는 말할 것도 없고,조합원들 사이에서도 파업 불참자를 '왕따'시키고 침을 뱉는 등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파업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해고된 노동자들이 제대로 구제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민주노총은 나몰라라 했고 변호사 비용,생계 비용은 모두 단위 노조에서 부담해야 했습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역할론에 대해 회의가 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위원장이 털어놓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이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 탈퇴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면 옳은 판단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상급노조가 없으면 인천지하철 노조의 위상이 축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기우에 그쳤다. 탈퇴 이후 인천시 산하 공기업 노조들과 노동자협의회를 구성해 오히려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지역 경제포럼과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상급노조에 납부하던 조합비를 모아 조합원들에게 가방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영진약품 노조 관계자는 "올 들어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과거 같으면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갈등이 팽배하겠지만 지금은 조합원들 사이에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힘을 합쳐 회사를 살리자는 의지가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탈퇴한 울산NCC는 조합비 운용에 여유가 생기고 사측과의 대화가 활기를 띠면서 휴게실과 체력단련장 등 사내 복지관련 시설을 늘릴 수 있었다. 울산NCC 노조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7~9월은 민주노총의 파업 지침을 하달받느라 바빴지만 올해는 조합원 복지 현안을 꼼꼼히 챙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KT 노조도 지난 7월 민주노총 탈퇴 이후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KT 노조 관계자는 "민주노총 지침에 따라 간부들이 주도해 움직이던 조합 운영 방식이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조합원들의 호응도도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