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게임기 등 전력 표준화 제조업체 반대로 난항

온실가스 방출이 전 지구촌의 화두로 부상하면서 오는 22일 유엔에서 세계 100여개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열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우리 생활 주변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무분별한 전력 소모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대형 평면 액자형 TV와 컴퓨터 게임기 등 가전제품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온실가스 방출 억제를 위한 노력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보도했다.

퍼스널 컴퓨터와 아이팟, 휴대전화, 게임기 등 새로운 전자제품의 출현으로 인해 미국 가정의 평균 전자제품 보유 대수는 1980년대 3개에서 최근에는 25개로 늘어났다.

전세계적으로도 가전제품은 전체 가정 전력 수요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20년 동안에 현재의 3배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밝혔다.

문제는 요즘 전자제품은 리모컨의 신호음을 기다리거나, TV 프로그램을 녹화하기 위해 완전히 전원이 차단되지 않으면서 항상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로런스 버클리 국립 실험실의 앨런 마이어 수석 연구원은 "우리는 모든 것이 항상 켜져 있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가전제품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560개의 화력발전소, 또는 230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더 설립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만큼 탄소배출량을 높일 수 밖에 없다.

또 미국 가정의 40%가 소지하고 있는 비디오 게임기의 경우에도 아이들이 언제나 손쉽게 게임을 하기 위해 항상 전원을 `온' 상태로 유지하기 때문에 전력 낭비를 막기가 어렵다고 한다.

미국 국가자원보호위원회는 X박스 360,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 등과 같은 게임기의 연간 전력 소비가 미국에서 9번째 큰 도시인 샌디에이고의 1년치 전력 수요와 맞먹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력 낭비를 해결할 유일한 방안은 전력 소비 효율화 조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90년대에 냉장고에 대한 전기 효율 표준화가 실행되면서 전력 수요가 45%나 감소했고, 세탁기도 1980년대 것 보다 전력 소모가 70%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TV나 게임기 등은 제조업체들이 표준화를 충족시키려면 고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회피하고 있고, 이들의 로비로 연방의회의 입법 작업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연방 차원의 규제 공백 상태에서 캘리포니아주는 자체적으로 TV 등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오는 2013년까지 전력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지만, 관련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미 가전제품 협회의 수석 기술정책 국장인 더글러스 존슨은 "정무의 표준화 의무 정책은 소비자들의 수요와 기술 개발로 인한 혁신이 본질인 산업의 기본속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제품의 가격을 높이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NYT는 효율화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해도 `스탠바이' 상태에서의 전력 소비를 최소화 하는 장비들의 경우 불과 몇 센트만 더 부담하면 되고, 극단적으로 100달러까지 비용이 더 들어간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각 가정의 전력 소비 감소로 그 비용이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