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직원이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면 법적 효력이 있을까. 법원은 그동안 '종이 문서'를 통한 서면통지만 해고 효력이 있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이메일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뒤집은 첫 판결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2부(부장판사 박기주)는 20일 D건설 직원이던 김모씨가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한 것은 무효"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1998년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발돼 2년 동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고 연수기간을 1년 연장해 2001년 석사학위를 땄다. 이후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연수기간을 세 차례 연장했지만 박사과정을 끝내지 못했다. 김씨는 이에 연수기간 재연장을 신청했다가 2007년 10월 회사 측으로부터 해고 사실을 이메일로 통보받았다. 재판부는 "원고가 해외연수 동안 회사 측과 이메일로 교신해왔고,해고 사유가 담긴 인사위원회 의결통보서도 전달받았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해고 남발 방지 및 법률요건 명확화라는 해고 서면통지제의 입법 취지로 볼 때 이메일 통지는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근로기준법상 해고통지의 요건을 좁게 해석해온 그동안의 판결과 다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며 그럴 때만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 법률관계에서 '서면'은 '종이로 된 문서'를 의미한다. 특히 근로기준법처럼 당사자 간 합의나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적용되는 '강행법규'에서 특정 법적 행위가 서면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했다면 이메일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 법원의 판단이었다.

결국 이번 판결은 서면의 범위를 이메일로 넓힌 첫 판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상급심에서도 이메일을 인정할지는 지켜볼 문제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서면의 의미를 전자문서로 확대한 것은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면서도 "일방적 통지가 아니라 거듭된 연수기간 연장으로 인한 업무 지장,통상의 교신수단 등이 감안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상급심의 판단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