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법 "신의성실의 원칙상 소멸시기 미완성"

간첩 혐의로 보안대에서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숨진 30대 어부의 유족에게 24년 만에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정재규 부장판사)는 1985년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어부 임모(당시 30)씨의 동생 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족 각자에게 7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평범한 어부였던 임씨는 1985년 7월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 간첩 혐의로 보안부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자 평소 집주인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강제연행됐다.

임씨는 28시간이 넘도록 조사를 받고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지만 몸은 이미 고문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조사 2주 후 숨졌다.

이후 임씨의 유족은 2001년 12월 "망인이 보안대로 끌려가 지하 조사실에서 전기고문과 구타 등을 당하는 등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유족들은 2005년 12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실위원회(이하 진실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내 "망인이 보안대에 의해 영장없이 불법구금됐고 수사 과정에서 구타,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임씨의 동생 2명은 결국 국가를 상대로 각각 3억1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국가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10년)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법적 소멸시효가 지났지만 유족이 스스로 사건의 실체를 알고 대응할 수 없었다고 보고 신의성실의 원칙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개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이 사건은 위법성이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점, 망인과 유족들의 피해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치는 손해를 금전으로나마 배상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일 경우 원고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은 이상 손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없다"면서 "이는 사실상 사법부가 원고들의 권리 보호를 포기하는 셈이고 민주화운동 피해자들과의 형평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는 등 그 배상책임을 피하려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허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군산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sollens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