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유예안을 포기하고 원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한 한나라당이 △비정규직 사용기간 6년까지 가능 △정규직 의무전환 비율 도입 등을 새로운 해법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노동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인 방안"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고용시장 혼란은 현행 법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입증한 것"이라며 "사용기간 연장이나 정규직 의무전환 비율 도입 같은 방법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 △비정규직의 차별금지 강화 △정규직의 임금 유연성 등을 제시했다.


◆"현실성 없는 해법"

한나라당은 정규직 전환 의무 적용을 1년6개월간 유예하자는 기존 당론을 사실상 접고 노동법 전반을 손질해 기업도 살고 근로자도 사는 근본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조원진 국회 환경노동위 한나라당 간사는 대안으로 △2년의 사용기간에 2년씩 두 번 갱신해 모두 6년(2+2+2)까지 고용 △정규직 의무 전환 비율 도입 △사업장 규모별 차등 적용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당초 정부가 2+2년(2년 사용에 2년 추가)을 추진하다가 '눈 가리고 아옹'이란 지적을 받자 4년 연장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수정했다"며 "한나라당이 이제 와서 '2+2+2' 방안을 내놓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규직 의무전환 비율 도입에 대해서도 노동시장에 악영향을 미쳐 일자리만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재황 한국경총 본부장은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정규직 전환 비율을 법으로 강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정규직 전환 강제는 결국 기업에 부담만 안겨줘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한나라당의 사용기간 6년 연장 방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이 논란 속에 시행된 만큼 사용기간 제한 등 법규 정비와 관련한 논의를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 지원금(1185억원)을 조기 집행하자는 입장이다.


◆"해법은 임금 유연성"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무급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노동연구원장)은 "현행법을 손질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지금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은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연구위원은 "정부가 직무에 따른 임금 수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직무급을 표준화시켜 시장 질서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정부나 여당도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어 교수는 비정규직 해법으로 직무급 임금체계 실시와 함께 비정규직 차별금지 강화와 정규직의 임금 유연성을 제시했다. 어 교수는 "미국에서는 기간 제한과 사유 제한이 없고 비정규직도 없지만 시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며 "이는 임금체계가 직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 유연성만 확보돼도 비정규직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서만 기간을 제한하고 차별을 금지하다 보니 기업의 도급 근로자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며 "도급에 대한 차별 금지도 함께 시행해야 비정규직 보호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