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대검 중수부는 2005년 A그룹 계열사인 B사가 C사를 인수 · 합병(M&A)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회계분석수사팀을 동원,B사와 C사 재무제표부터 따져보기 시작했다. M&A 과정에 대한 수사인 만큼 두 회사 간 대여 주식매매 자산거래 등을 살폈다. B사의 2000년 대차대조표에 계상된 영업권 938억원이 2001년에 사라진 것을 찾아냈다. 영업권이란 M&A 대가로 상대방에게 주는 권리금.가치도 없는 영업권을 대차대조표에 적어오다 자산으로 더 이상 표기하기 힘들게 되자 장부상에서 없앤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C사의 합병 전 재무제표를 보니 순자산이 마이너스 1042억원에 달했다. B사가 C사를 합병하면서 1042억원의 부실을 떠안은 셈이다. C사의 부실을 은폐하려고 B사에 합병시켰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룹오너 입장에선 부실을 감출 수 있지만 B사 주주들은 대규모 손실 인수에 따른 주가 하락이란 불이익을 보게 되는 구조다. C사 회계분석 담당자를 추궁한 결과 C사를 청산하기 위해 B사가 합병했다는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B사 대표이사와 A그룹 부회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돼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례 2.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말 국내 대형 금융기관의 A증권사 인수에 의혹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수사팀은 며칠간의 회계분석을 통해 재무제표상에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계정을 포착했다. 2004년 8억7000여만원에 불과하던 급여 지출이 2005년 65억5000여만원으로,지급수수료는 5억4000여만원에서 50억6000여만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2006년에는 이 계정들이 각각 18억여원과 1억1000여만원으로 다시 급감했다. 급여 등을 많이 지급한 것처럼 부풀려 자금을 조성,비정상적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았다. 관계자를 추궁하자 비자금이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증권사를 팔기 위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검찰이 회계장부 분석을 통해 큰 성과를 얻고 있다. 횡령이나 배임을 속이기 위해선 분식회계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착안해 수사팀 전문성을 보강하고 인력을 늘리면서 초대형 기업 비리를 속속 잡아내고 있다. 대검찰청은 가장 흔한 기업 비리 유형으로 △특수관계자를 위해 기업에 손실을 끼치는 배임 △로비를 위한 비자금 조성 △대표이사 등의 법인자금 횡령 등을 꼽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비리를 회계장부에 아예 기록하지 않거나 합법 거래를 가장해 회계장부에 올린다.

기업 부정은 대부분 회사 자금이동을 수반하기 때문에 회계 장부를 거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회계 전문가가 회계장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기업 비리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회계장부 수사는 기업환경 분석에서 출발한다. 기업이 속한 업종의 특성과 해당기업의 개략적인 내용(지분관계,계열사,거래처,제품특성) 등을 먼저 파악한다.

이어 해당 기업 재무제표 분석에 들어간다. 재무제표 비교를 통해 분식 흔적을 찾는다. 주로 해당기업 과거 재무제표,동종기업 재무제표 등에 비춰 비정상적인 계정들을 찾아낸다. 분식에 주로 사용되는 계정은 매출채권,재고자산,지분법적용투자주식,투자유가증권,장기차입금,매출액 등이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은 거의 대부분 업종에서 분식에 즐겨 사용되고 있다. 수사 단서나 증거를 확보하면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거쳐 범죄 사실을 특정화시켜 기소한다.

업종별로 비리 유형은 차이가 있다. 건설사들은 일용직 근로자의 인건비 등을 조작해 비자금을 만든다. 지급하지도 않은 임금을 가공해 회계장부에 넣거나 대표이사 친인척을 직원으로 올려놓고 임금을 빼돌리는 것이 흔한 수법이다. 자동차 · 기계 업종에선 자회사 부당지원과 하청업체를 통한 가공거래가 자주 쓰인다. 전자업종은 급격한 가격변동을 이용한 자회사와의 비정상적 거래가 고전적인 수법이다. 철강 업종에선 원재료 구입 리베이트 비리가 많고,정유 업종에선 예상 유가와 배치되는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했다면 의심해볼 만하다.

대검찰청은 회계 분석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2004년부터 '회계분석수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8명,검찰 수사관 2명 등 수사관 1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기업 · 금융을 비롯한 특수수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동열 첨단수사과장은 "더 많은 검사들이 회계 수사기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책자를 발간하고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이해성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