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노조 3만명의 조합원이 민주노총에 등을 돌렸다. KT 노조의 탈퇴는 올해 잇따라 탈퇴를 선언한 다른 기업노조들이 민주노총에 안겨준 것보다 훨씬 큰 충격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노조 규모나 그동안의 위상에 비춰볼 때 노동계 전체에 던지는 여파도 클 수밖에 없다. KT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 중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노조인 데다 창립 이후 15년간 IT(정보기술) 산업 노조의 수장으로 묵묵히 민주노총과 투쟁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현실과 괴리된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게 KT 노조 조합원들의 판단이다.

KT 노조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기업노조에서는 "민주노총과 계속 같이 가야 하느냐"는 현장 조합원들의 회의와 불만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올 들어 민주노총 탈퇴 기업노조들이 줄을 잇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탈퇴 의미와 파장

94.9%의 찬성률은 올해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한 기업들 중에 가장 높은 수치다. KT 노조 조합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KT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정서가 이런데도 민주노총은 KT의 탈퇴에 대해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와 회사 측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KT 상품을 불매하겠다는 등 으름장을 놓고 있다"며 "민주노총이 현장의 목소리와 얼마나 괴리돼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결과"라고 자평했다.

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향후 노동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우선 6~7월 임단협 시즌을 맞아 다소 주춤했던 민주노총 탈퇴 열기가 다시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IT연맹 소속 기업노조들이 동요하고 있다. KT의 IT 전문 자회사인 KT데이타시스템 노조도 조합원 총회를 열어 조합원 150여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산하 IT연맹에는 이번에 탈퇴를 확정한 KT와 KTF,KT데이타시스템 노조 외에 KT파워텔,KT네트웍스,KTF테크놀로지스,KT서브마린,KT텔레캅의 노조가 소속돼 있다. 이들 노조가 향후 임단협에서 연대투쟁을 통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군소 IT업체들보다는 KT 노조와 제휴하는 게 유리해 민주노총 탈퇴가 잇따를 전망이다. 한 KT 계열사 노조의 위원장도 "KT 노조의 탈퇴로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민주노총 내에서 IT연맹의 위상이 약화되고 연대투쟁의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민주노총

올 들어 민주노총을 탈퇴한 기업노조는 인천지하철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영진약품 NCC 승일실업 그랜드힐튼호텔 진해택시 단국대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폴리미래 등 10여곳에 달한다. 여기에 충북계약직공무원 노조 등 단위노조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또 서울메트로 등 전국 지하철노조 6곳이 민주노총과 별도의 전지노련(전국지하철노조연맹)을 출범키로 한 데 이어 다른 업종 기업노조들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줄 수 있는 업종별 연맹을 검토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노총 산하 기업노조 1,2위인 현대차와 기아차에서도 반(反) 민주노총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현대차 등 완성차 노조의 지역지부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한 노조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지부 산하 정비위원회는 최근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에 내는 조합비 납부를 거부키로 결의한 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했다. 금속노조 홈페이지와 현대차지부 홈페이지 등에는 "금속노조가 지역지부 전환을 통해 완성차 노조를 와해하려 하고 있다"며 "더 이상 금속노조와 같이할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금속노조가 집중하고 있는 쌍용차 파업 연대투쟁에도 일부 조합이 투쟁 방식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지도력이 크게 흔들리는 양상이다.

◆양대 노총 중심 판도 바뀌나

최근 들어 나타나는 민주노총 탈퇴 움직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과거 단위노조 중심으로 이뤄지던 탈퇴 열기가 올 들어서는 기업노조 위주로 바뀌고 있다. 또 KT,서울메트로,단국대 등 강성으로 소문난 각 업종별 대표노조가 탈퇴 열기에 가세하는 추세다. 세 번째는 양대 노총(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중 한쪽에서 탈퇴할 경우 다른 쪽으로 옮겨가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노조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대 노총 위주의 노조가 '다극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이해가 다양해지고 과거에는 없던 이슈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양대 노총은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괴리감을 느낀 노조들이 자신들만의 노선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노조도 이제 '서비스 조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며 "투쟁정신으로 무장된 구시대적인 서비스 마인드로는 시장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