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시시콜콜하게 '과목 수 줄여라''심야교습 제한해라' 일일이 지시해야 하면 그게 장관인가 과장이지."(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교육 정책을 관장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며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방안은 정책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제안 중 하나일 뿐이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

사교육 대책을 두고 당 · 정 간 서로 다른 얘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학원 운영시간을 제한한다 안 한다,내신 절대평가제로 돌아간다 안 돌아간다,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 수를 줄인다 안 줄인다 등등.사교육 대책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를 놓고 당 · 정 간 힘겨루기 양상이 펼쳐지면서 "(장관은) 개혁 안 하려면 나가라"(정 의원)는 식의 거친 말도 등장했다. 학부모 입장에선 헷갈리는 상황이다.

당 · 정이 해묵은 사교육비 문제를 놓고 새삼스럽게 공방전을 벌이게 된 데는 정치적 이해관계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여권 내에서는 현 정부에서 이탈하는 민심을 돌려세울 효과적인 방안으로 올초부터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제시됐다. 이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으면서 혼란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해법을 제시하는 측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정 의원,안 장관과 이주호 교과부 차관 등이다.


◆사교육비 얼마나 많길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여권 내 화두로 등장한 것은 지난 2월부터다. 교과부와 통계청은 전국 초 · 중 · 고 273개교 학부모 3만4000명을 표본으로 삼아 지난해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조9000억원에 달했다고 2월 말 발표했다. 이는 2007년 20조400억원보다 4.3% 증가한 것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3만3000원.전년 대비 5.0% 늘었다.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그만큼 쉽게 사교육이 줄지 않으리라는 의미기도 하다.

학생 한 명에게 월 수백만원을 투자하는 '고급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도 국민의 체감 사교육비 부담이 가파르게 커지는 원인이다. 사교육 시장 규모가 커지고 평균 자녀 수가 감소하면서 '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려면 돈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공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교과부는 작년 일반계 고교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가 24만9000원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월 8회에 200만~300만원짜리 과외도 흔하다.


◆교과부 "공교육 강화로 사교육 잡는다"

지금까지 확정된 사교육 대책은 교과부가 지난달 3일 발표한 내용이 전부다.

교과부는 '6 · 3 대책'에서 학원 난립을 막기 위해 △시 · 도교육청에서 조례로 오후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유도 △불법 학원 신고포상금제(학파라치) 도입 △온라인 학원 고액 수강료 제한 △중간 · 기말고사 문제 인터넷에 공개 등을 추진키로 했다. 또 학생의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국어고 입시에서 지필고사 폐지 및 수학 · 과학 가중치를 합리화하기로 했다. 초등학생의 학원 수요를 줄이기 위해 학부모를 방과후학교 코디네이터로 참여시키고 학부모 멘토링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교사초빙권 · 교육과정 편성권 등 학교 운영 자율화 △수준별 · 맞춤형 수업 강화를 위한 교과교실제 확대 등을 통해 공교육을 강화키로 했다.

교과부의 사교육 대책안 핵심은 '공교육 강화와 학원의 불법 영업 규제'로 귀결된다. 학교를 더 자유롭게 운영하도록 하면 학원에 굳이 가지 않아도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액 수강료를 받거나 운영시간 규정을 어기는 등의 학원 문제는 신고 포상금제로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원론적이지만 정부의 자율화 기조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정 의원 등은 "지나치게 간접적 · 우회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장기적인 사교육비 경감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민심 회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지난달 26일 여의도연구소 · 미래기획위가 주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 토론회에서 "교과부에 묻고 싶다. 어느 세월에…?"라고 했다. 다소 부작용이 예상되더라도 강경책을 써서 '즉각적인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학원 관련 대책 보강해야

공교육 강화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것은 교과부가 둔 '정석'이다. 전문가들은 이 방안으로도 장기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는 단기 처방을 요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교원평가제와 수준별 수업,학교 자율화 등은 결국 공교육을 강화하고 학원 수요를 줄인다"며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사교육에 의존하는 교육 현실의 '판'을 바꾸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교과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은 관료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교과부가 의지를 갖고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원(사교육)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려면 보다 정교하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송 교수는 "학원비 가이드라인을 어긴 학원에 대한 신고포상제는 초기에 학원들을 긴장하게 만들 순 있겠지만 장기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육지책일 뿐"이라며 "정확한 학원비가 공개되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신고포상금제는 땜질 처방"이라며 "학원 운영을 투명화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큰 학원,스타강사들부터 수입 구조를 공개하도록 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순서"라고 조언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요구했던 학원 운영시간 제한을 법제화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게 교육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불필요한 위헌 논란에 휘말릴 필요 없이 시 · 도교육청 조례로 정하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