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작업장 주변 고철을 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박영수씨(제강부)는 “작업이 끝나면 부서별로 할당된 고철수집량을 채우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며 최근 달라진 작업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 수집된 고철은 무게를 잰 뒤 제철소내 고철을 저장하는 스크랩 야드에 꼬박꼬박 쌓이고 있다.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요즘 제철소내 고철줍기에 나섰다. 60~70년대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의 모습이 글로벌 초일류기업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사상초유의 영업적자때문이다. 16일 광양제철소에 따르면 지난 3월 영업이익이 160억원 적자로 전환된 이래 최근 3개월간 누적적자가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지난 1987년 제철소 가동 이후 처음으로 월간 적자를 기록한 뒤 벌써 3개월째 적자행진이다. 적자는 국제경기 침체에서 비롯됐다. 연간단위로 철강제품가격에 반영되는 철광석 무연탄 등 원자재가격은 지난해 300%나 오른데 반해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감소로 가격이 30%가량 떨어진 게 결정타였다.

이 때문에 지난 22년간 적자라곤 모르고 살던 광양제철소도 처음으로 비상대책카드를 뽑아들었다. 연말까지 고철 2000t을 수거한다는 목표아래 20개 부서별로 100t가량씩을 할당했다. 수집실적이 좋은 부서엔 포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중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근무가 끝나면 작업장 주변에 버려진 고철을 줍고 있으며 설비점검부서원들의 경우 고철을 찾느라 공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모아진 고철은 제철소내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하이밀공장과 철강의 성분조정용 첨가물로 쓰이기 위해 제강공장으로 옮겨진다. 광양제철소의 연간 고철사용량은 360만t. 이 가운데 290만t가량은 제품 중 불량품을 재활용해왔고 나머지 70만t은 러시아 동유럽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해왔다.

광양제철소가 올해 수거할 고철 2000t을 t당 50~80만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10억~16억원에 이른다. 광양체철소의 연매출이 9~13조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액수로는 그리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철줍기카드를 꺼낸 것은 직원들과의 위기의식 공유와 공동대처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제철소 관계자는 “위기때 어떻게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음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이게된다”며 “올 7월이면 크게 떨어진 원자재 가격이 새롭게 반영돼 경영수지가 크게 개선될 전망이지만 위기대처능력을 키우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배경을 밝혔다.

광양=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