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됐던 '박종태 열사 투쟁승리 및 쌍용차 구조조정 분쇄 결의대회'가 올해 하투(夏鬪)의 본격적 시발점이 될 것으로 장담했다. 올 들어 민주노총이 기획한 첫 번째 대규모 상경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화물연대와 금속노조 등 산하 노조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 집회'로 끝났다. 1만명 이상 참석하리라던 집회는 2500여명이 모이는데 그쳤고,그나마 서울광장으로 옮겨 집회를 이어간다던 계획도 절반 이상의 참석자들이 흩어지면서 흐지부지 됐다.

노동계는 이처럼 올 하투 동력이 초반부터 위축되자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다. 특히 노동계의 투쟁 열기가 예년만 못하다는 진단이다. 경제위기로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 '강경투쟁 일변도로 가다가는 노사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노노 갈등까지 깊어지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파업 이후 노노갈등을 빚고 있고,화물연대는 화물차주들의 노골적 무관심과 외면으로 파업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도 노조 사무국장을 제명하는 등 투쟁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조창민 사무국장은 지난 3월 말 울산 3공장에서 생산하는 아반떼 생산 물량 일부를 2공장으로 돌리기로 한 결정과 관련해 소속 계파로부터 제명 조치됐다. 회사 측은 조직 내부의 갈등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흔들리는 파업 전선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3일 집회에서 "(현정권을)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남은 임기에 가장 철저하게 복수당할 사람이 우리 노동자"라며 "현장에서 죽을 각오로 확실하게 조직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투를 앞두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파업 일정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5일에는 6월부터 전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가 최근에는 투쟁 일정을 7월 초로 조정했다. 이마저도 날짜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등 대형 노조들의 파업 참여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임단협 핵심사항인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노사 간 협의가 2~3회 정도 더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일러야 6월 마지막 주에 가서야 노조 측의 협상 지속과 결렬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윤해모 현대차 지부장도 최근 금속노조 파업 관련 기자회견에서 "예년과 달리 사측에 임단협 일괄제시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 후 사측안에 따라 파업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밝힌 바 있어 과거처럼 협상중도에 결렬을 선언할 가능성은 적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방침에 따른 7월 초 파업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총파업의 전초전 성격이었던 화물연대와 쌍용차 파업 역시 일반 화물차주들의 불참과 노노 갈등으로 기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조합원 공감 확보에 실패

노동 전문가들은 하투 동력 약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 위기'를 꼽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하투가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현 경기 상황이 가장 큰 요인"이라며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무리한 파업 추진이 오히려 내부 반감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화물연대 파업의 경우 일감이 지난해에 비해 20~30%가량 줄어든 상황이어서 섣부르게 동참하기가 힘들다는 게 화물차주들의 생각이다. 쌍용차 역시 "다른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데 쌍용차 노조만 경영 상황을 도외시한 옥쇄파업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파업 이슈가 지난해와 달리 정치적 사안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도 하투 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집회에서 '특수고용직 근로자 노동기본권 보장'이나 '이명박 정부의 노동탄압 분쇄' 등 정치색 짙은 구호만 터져나오자 근로자와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그러나 오는 19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파업을 통해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후 26일 사무금융노조 간부 파업,다음 달 1일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거쳐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