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

12일 스위스 겐프를 시작으로 취리히,베른,바젤에서 총 4회의 공연을 갖는 '온몸예술가' 강성국씨(30)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무용을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씨는 이번 유럽 초청 무대에서 현대무용가 김남진과의 듀엣 작품 《브라더》를 공연한다. 《브라더》는 장애인 동생을 가진 형의 상처와 아픔을 다룬 작품이다.

강씨는 "올초 제 무용을 본 스위스 무용계 인사들이 공연 내용이 좋다며 무용축제에 초청해 이번 무대가 성사됐다"며 "9월에는 독일 공연도 잡혀 있다"고 말했다.

강씨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뇌성마비 청년 예술가' '장애인 퍼포머'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저 배우가 누구기에 진짜 장애인처럼 연기를 잘 하느냐." 그는 자신이 장애인임을 모른 채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이런 웅성거림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단다.

대체 연습을 얼마나 고되게 한 걸까. 옷깃 사이로 보이는 그의 살이 상처투성이다. 사실 그는 걸을 때도,말을 할 때조차도 몸을 비틀어야 하는 1급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태우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무척이나 길다.

그래서 그가 무대에 선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무용수라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장애를 갖고 있는 그가 왜 보통 사람들도 하기 힘들다는 무용가의 길을 고집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대중과 호흡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무대에서 모든 게 이뤄지기 때문에 무용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이 무대에 올랐다고 해서 박수를 받는 게 아니라 예술성으로 승부하는 예술가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불편한 몸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퍼포먼스를 하던 그를 알아본 여러 무용수들이 그를 전문 무용수의 길로 불러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는 "집에서 반대를 심하게 하고 돈벌이도 시원찮아 몇 년 전 전공 분야인 광고디자인 일을 해봤지만 적성이 아닌 것 같고 답답해서 참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네가 하면 얼마나 오래 하겠느냐"며 미심쩍어 하던 누나와 남동생도 지금은 스케줄을 먼저 챙겨줄 만큼 그의 팬이 됐다고.

그는 속깊은 효자다. 반대하던 부모님께 무대에 선 자신을 보여드리고 싶어 억지로 모시고 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는 "무대에서 눈을 마주치려고 바라보면 자꾸 다른 데 시선을 두고 절 차마 못보시더라고요. 그걸 보는 제 마음이 아파서 이제 강요는 안해요"라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문화예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금 느리지만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그의 눈빛에서 누구보다 건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글=김보라/사진=정동헌 기자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