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명동 국립극장이 73년 만에 '명동 예술극장'이란 이름으로 5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1936년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화관이었다.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곡절을 안고 있는 건물이다. 일제 해방 직후인 1950년대에는 시공관,1960년대에는 '명동 국립극장'으로 탈바꿈하면서 명동을 한국 문화예술의 상징지역으로 이끌었다.

이후 1973년에 남산국립극장이 개관하면서 '명동 국립극장'은 문패를 내렸고,1975년에는 한 금융사에 팔려서 극장 기능이 상실되고 업무용 사무실로 운명이 바뀌었다. 이로써 명동이 가졌던 한국 예술문화의 대표지역이란 상징성이 퇴색돼갔다.

1980년대 들어 명동은 패션을 상징하는 상업적 공간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1990년대에 들어 압구정동에 밀려 잠시 쇠락하는 듯한 명동은 2000년대 들면서 해외 여행객의 발길이 쏠리면서 다시 활력을 찾게 됐다.

옛 국립극장 소유주인 금융사는 이 건물을 헐고 새로운 오피스타워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1994년부터 시작된 복원운동 덕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2003년에 건물을 사들여 복원에 나서면서 오늘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로써 명동 국립극장에 향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하고 있다.

명동 국립극장의 운명이 보여주듯 서울에서는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져갔다.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도 지금은 국세청 빌딩에 자리를 내줬다.

역사학자들과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옛 명동 국립극장이 외관이나마 제 모습을 찾은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건물의 복원사업은 단순한 보존의 의미 이상이다. 해방 이후 서울의 문화중심이었던 명동을 그리워하는 시민들과 예술인,상인들에게 흘러간 삶의 궤적을 되살렸다는 뜻을 갖는 것이다.

설계자도 이러한 의미를 잘 이해했다. 일단 명동의 기억을 간직한 외부벽체의 원형 보존에 신경을 썼다. 명동거리의 역사와 현재,그리고 미래의 문화적 이야기를 담는 재생의 그릇을 그 안에 만들어 준다는 개념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재생의 그릇은 공연장의 몸체가 됐다. 로비에서 보는 공연장의 모습은 거대한 도자기가 공중에 떠 있는 형상이다. 옛 명동 국립극장이 현대적인 몸매로 다듬어진 것이다.

처음 명치좌라는 모습으로 문을 열었을 당시엔 명동에는 저층 건물들이 가득했다. 이 때문에 지상 5층짜리 명동 국립극장은 그 존재만으로 주위를 압도했다. 고층건물로 가득한 요즘 명동에서는 그 반대다. 주위 건물들이 국립극장을 내려다 보는 형국이다.

설계자는 옛 국립극장이 문화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 듯 지붕 위로 돌출된 기계실과 옥상의 레스토랑 공간을 마치 꽃입이 서로를 감싸면서 하늘로 솟구치는 자태로 디자인했다. 꽃잎은 밤이면 빛을 발한다. 폭발하는 예술적 에너지로 주위를 밝히는 등대가 연상되기도 한다.

과거 영화관으로 첫 문을 열었던 옛 국립극장 맞은 편에는 현대적 영화공간의 상징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문화예술의 거리,패션 · 금융의 거리,외국인들의 관광 명소 등 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명동이 이번에 새로 단장한 명동 예술극장으로 인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김남훈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