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인정되지만 대가 소명 부족"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부탁을 받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에게 로비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대가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하려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한 점이 인정돼야 하는데 검찰이 제시한 금전 거래가 로비의 대가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검찰은 천 회장이 작년 8월 초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 올림픽 응원을 갔을 때 박 전 회장이 건넨 15만 위안(2천500만원)과 박 전 회장이 천 회장의 ㈜세중게임박스에 투자했던 돈 중 돌려받지 않기로 한 6억2천300만원을 로비 대가로 봤다.

그러나 법원은 15만 위안이 선수단 격려금이라는 천 회장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1971년부터 막역한 관계였던 점, 또 두 사람의 재산 정도에 비춰봤을 때 2천500만원을 로비 대가로 보기에는 무리라고 봤다.

세중게임박스의 주식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천 회장이 주주인 박 전 회장에게 투자 정산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투자손실 문제는 2007년부터 논의됐지만, 세무조사는 작년 8월 시작돼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내세웠다.

증여세 포탈 부분은 조세의 부과ㆍ징수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고 양도세 포탈 부분은 일부 소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미납 양도소득세를 모두 완납한 점을 참작했다고 법원은 설명했다.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소명이 됐으나 범행의 정도와 동기를 참작했을 때 비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미 확보된 증거에 비춰 천 회장이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할 우려가 없고 고령인 점, 전과가 없고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했을 때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영장 기각의 이유로 제시했다.

김형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며 무죄 추정의 원칙이 깨질 정도로 강력하게 천 회장의 범행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