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ㆍ관계 인사 수사도 차질 빚을 듯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표류 위기를 맞게됐다.

이로써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8일 만에 재개된 수사의 동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임채진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퇴진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이 겨냥한 검찰의 책임론을 무마하기 위해 수사를 재개하면서 먼저 `살아있는 권력'인 천 회장의 구속을 통해 난국을 정면 돌파하려던 시나리오가 차질을 빚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형성된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선택한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는 천 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였다.

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한 기업인 친구라는 점에서 구속하는 데 성공한다면 야권 등에서 줄기차게 제기해온 형평성 시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는 `검찰의 표적 수사'의 책임이 크다는 여론이 비등해진 상황에서 권력 핵심부인 천 회장의 구속을 통해 이번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천 회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함으로써 천 회장 구속을 발판으로 삼아 여권 핵심부로 진입하려던 수사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대척점에 위치해 `살아있는 권력'으로 분류된 천 회장과 여권 실세들의 금품 수수 의혹의 실체를 낱낱이 밝힘으로써 수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은 일단 물거품이 된 셈이다.

검찰이 이번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할 수 있는 남은 카드가 더는 없다는 점에서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제기해온 검찰 책임론이 더욱 확산하면서 김 법무장관과 임 검찰총장의 퇴진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특히 수사팀 교체 또는 중수부 폐지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이번 수사 전체의 당위성이 뿌리째 흔들리지 않을까 검찰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권력 주변의 비리 척결이라는 수사의 정당성까지 훼손해선 안된다"며 임 총장 퇴진 요구 등에 대한 방어막을 쳐 왔었다.

천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이번 수사의 동력이 크게 약해진 만큼 향후 여야 현역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관계 인사들의 수사도 탄력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연차 전 회장이 검찰 조사나 법정 진술에서 뇌물 공여 혐의 등을 적극적으로 시인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그동안 뇌물수수 의혹으로 코너에 몰렸던 인사들을 압박할 마땅한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을 겨냥한 여ㆍ야 모두의 공세가 커지면서 공직자비리.부패수사처(공수처) 또는 상설특검 도입, 피의사실 공표 금지 법제화, 검찰 기소독점주의 개선 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여 검찰이 어떤 반전 카드를 꺼낼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