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쌀 시장 개방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다. 정부는 관세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쌀시장 조기 개방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농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쌀시장과 농민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놓고 정부와 농민단체 간의 견해가 극명히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쌀시장 개방은 망설일 이유가 별로 없다. 관세화 방식으로 전환하더라도 우리 쌀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이 충분할 뿐아니라 개방 시기를 앞당기는 데 비례해 수입 물량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도 생겨나는 까닭이다. 우선 우리 쌀의 품질 개선 추세는 괄목할 만하다. 무농약 유기농 오리농법 등 다양한 재배방법을 동원한 쌀들이 쏟아져 나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품종별 지역별로 다양한 브랜드가 선을 보이는가 하면 가격대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관세화를 전제로 할 경우 가격경쟁력도 절대 우위다. 국제 쌀가격이 최근 크게 뛰어오른 탓이다. 요즘 국내산 쌀 가격(일반미 기준)은 80㎏당 16만원 정도이고 한국산과 비슷한 미국산 중립종의 국제시세는 100달러 안팎이다. 원 · 달러 환율을 감안하면 12만원가량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당시 제시됐던 300~400% 수준의 관세를 매기면 국내 유통가격은 50만원 선에 이르게 된다. 입맛에도 잘 맞지 않는 수입쌀을 이런 값에 사먹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관세화로 이행하면 앞으로의 수입물량도 줄어든다. 우리나라는 시장개방을 유예시킨 대가로 매년 일정 규모의 외국 쌀을 5%의 관세만 부과해 수입하는 의무수입(MMA · 최소시장접근)물량을 배정받았다. 이 물량은 2005년 22만5575t을 시작으로 매년 2만347t씩 늘어 올해는 30만6964t, 2014년에는 40만8700t까지 불어난다. 2015년 이후에도 40만8700t은 매년 수입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부터 관세화로 전환하면 MMA물량은 30만6964t에서 멈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 경우 절약할 수 있는 수입 비용이 향후 10년 동안에만 1800억~370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문을 활짝 열어도 들어올 수 없는 외국산 쌀을 수입하느라 이처럼 많은 돈을 낭비하는 것은 수긍하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MMA물량이 많으면 국내 쌀가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농민들에게도 피해를 초래하게 마련이다. 2014년 MMA물량 40만8700t은 연간 쌀 소비량의 12%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고 보면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쌀시장을 개방한 일본과 대만의 사례에서도 조기 관세화의 필요성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은 당초 예정 시점보다 2년 앞선 1999년, 대만은 2003년에 각각 쌀 조기 관세화 조치를 취했지만 높은 관세율 등으로 인해 실제 민간에서의 쌀 수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개방 초기 쌀값이 급락하기도 했지만 그런 혼란은 단기간에 그쳤다.

물론 국제 쌀 가격 및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알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중한 견해를 취한다 하더라도 단시일 내에 지금의 큰 가격 격차를 반전시킬 만큼의 시세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게다가 2015년부터는 어차피 관세화로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조기 관세화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따라서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만 농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사회적 혼란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조기관세화는 곧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