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전자가 한국반도체를 인수,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던 1974년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기술 수준이 빈약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요지였다. 미쓰비시 연구소의 예언은 삼성전자가 1983년 자력으로 64K D램을 개발하는 순간 허언이 됐다. 미래를 내다보고 10년간 끈기있게 이뤄진 연구 · 개발(R&D) 투자가 결실을 맺은 것.삼성전자가 이 같은 '기술 드라이브'를 통해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오르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기술 승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

경쟁 업체보다 한발 앞서가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은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빙하기'에도 빛을 발했다. 미세공정 기술을 통해 원가를 경쟁사보다 빠르게 낮춘 덕에 피해를 덜 입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금명간 46나노(1㎚=10억분의 1m) 공정을 통해 D램을 생산할 예정이다. 기존 56나노 공정에 비해 생산성이 30% 이상 높다. 일본 엘피다,미국 마이크론 등이 막 50나노 공정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는 1년이 넘는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담당 사장은 "기술 우위 전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올해도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D램 업계 2위에 오른 하이닉스반도체도 삼성전자와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며 동반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 3분기부터 D램 생산 공정을 현재 54나노에서 44나노로 전환한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업계에서 기술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최근에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D램 시장에 뛰어들며 사업 분야를 넓히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업황이 극도로 악화됐던 지난해에도 7000억원을 R&D에 투자했다"며 "올해는 P램,Z램 등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위 프리미엄의 힘

D램 반도체의 가격은 고정거래가와 현물가 두 가지로 나뉜다. 고정거래가는 대형 거래선에 납품하는 가격을,현물가는 스폿(spot)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가격을 각각 의미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두 용어를 사전적인 의미와 다르게 풀이한다. 전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후자는 후발 업체들이 생산하는 반도체의 가격이라는 것.HP,델 등 주요 반도체 수요처들이 품질과 수급의 안정성 등을 감안,업계 1~2위 업체들과 거래하기 때문에 이 같은 분석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지난해 말에는 고정거래가가 현물가보다 20%가량 높았다. 후발 업체들의 재고 부담→반도체 물량의 현물시장 유입→현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면서 두 가격 간 격차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하아닉스가 반도체 치킨게임의 피해를 덜 본 것은 안정적인 거래선 덕분"이라며 "출혈경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시장조사 기관 아이서플라이가 '삼성전자는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잃을 게 없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율도 한국 업체들의 편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원 · 달러 환율이 바닥권을 형성하면서 원화를 기준으로 한 반도체 생산 원가가 낮아진 것.지난해까지 업계 3위를 지켰던 일본 엘피다는 반대 사례다.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으로 지난해 D램 업계 3위에서 지난 1분기 4위로 순위가 처졌다.

김현예/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