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회의 어제 10곳→오늘 1곳 주춤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개최됐던 소장판사들의 판사회의가 19일엔 광주지법에서만 열릴 예정이어서 판사들의 집단 움직임이 일단 겉으로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국면이다.

바로 전날인 18일엔 부산ㆍ인천지법 등 전국 10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리는 등 소장판사들의 집단행동이 전국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지방법원 18곳, 고등법원 5곳, 특별법원 3곳 등 각급 법원 26곳 중 전날까지 판사회의가 열린 곳은 절반을 넘어선 14곳으로 숫자상으로도 반환점을 돈 셈이다.

현재 외부에서 보기엔 판사들의 움직임이 잠잠해졌지만 이들이 묵시적으로 요구한 신 대법관의 `결단'이 나오지 않는 한 사법부의 내홍은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 `申 결단해야'…강도 높아진 요구 = 판사회의의 공통 결론은 신 대법관의 행위가 명백한 재판개입이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고 조치와 신 대법관의 사과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흡했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핵심 쟁점인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판사들의 요구 수위가 높아졌다.

지난 14일 첫 판사회의를 가진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들은 "추후 논의하겠다"며 언급을 자제했지만 같은 날 열린 서울중앙지법 회의에선 판사들이 "대법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공개하면서 사실상 처음으로 신 대법관에게 거취 관련 용단을 촉구했다.

다음날 서울동부지법 단독판사들은 `절대 다수'가 대법관직을 맡기에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정리했고, 서울북부지법 판사들은 "더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표현을 처음으로 공동 의견으로 내놓았다.

18일 의정부지법 판사들은 "우리 다수는 신 대법관의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천지법에선 "신 대법관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좀더 구체적으로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 `막내판사'부터 대법관까지 가세 = 6∼14년차인 단독판사들이 중심이 된 판사회의에 법원의 막내격인 지방법원 배석판사들과 중견판사인 고등법원 배석판사들까지 합류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부장판사인 재판장으로부터 도제식 업무 지도를 받는 지방법원 배석판사들은 대체로 집단 행동에 동참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만 18일 서울가정법원 판사들은 지방법원 배석판사급으로는 처음으로 판사회의를 열었다.

또 부장판사 승진을 바라보는 광주고법과 대전고법, 특허법원 배석판사들도 같은 날 처음 회의를 연 가운데 광주고법 판사들은 예상을 깨고 "신 대법관이 최종심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강한 결의를 내놨다.

배석판사만 100여명으로 고등법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서울고법의 일부 배석판사들도 물밑에서 판사회의 소집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법 배석판사 역시 현실적으로 재판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현안에 대해 소신껏 발언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 대법관의 사퇴를 바라는 단독판사들은 `우군'을 갖게 된 셈이다.

게다가 진보 성향인 박시환 대법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현 상황은 5차 사법파동으로 부를 수 있으며, 신 대법관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대법관을 하고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소장파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법원 안에서는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소장파의 이 같은 집단행동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각도 상당히 존재한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법 진상조사단의 결론과 윤리위의 결정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보이고 대법원장의 엄중 경고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인데도 젊은 법관들이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판심(判心)' 달랠 묘수 없나 = 대법원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비슷한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막는 제도 마련이 최우선 과제라는 입장이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18일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판사 한분 한분이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ㆍ합리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리라 믿고 있다"며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또 신 대법관 사태의 발단이 된 법원장의 배당권 남용을 막기 위한 `배당 예규' 개정안을 공개해 재발 방지 노력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일선 판사들이 바라는 것과 대법원이 해줄 수 있는 조치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사법부 수뇌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행위를 사법행정권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윤리위의 결정과 이용훈 대법원장이 내린 `엄중 경고' 조치가 부당하고 미흡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을 경고하는 선에서 사태를 종결지은 터여서 결정을 스스로 번복하지 않고서는 소장판사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형편이다.

혹시 신 대법관이 마음을 바꿔 용퇴를 결심한다 해도 대법원이 인사검증을 제대로 못 했다는 비판과 함께 대법관에 대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상처를 받을 수 있어 이 또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