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

세계적인 실험실 설계 권위자인 장택현씨(56)가 대덕연구개발특구 실험실설비 제조업체인 CHC랩(사장 차형철)의 초청으로 대전을 방문했다.

장씨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생화학 석사를 딴 뒤 전공을 건축학으로 바꿔 미국 최대 설계회사인 HOK의 실험실설계부문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그는 오는 9월에 완공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립 킹압둘라과학대학교의 모든 실험실 설계를 맡았다. 이 대학 실험실 설계는 세계최고의 과학대학을 목표로 3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초대형프로젝트다. 이 대학교에 초빙되는 교수들은 거의가 노벨상급 과학자들이다. 장씨는 이들에게 가장 알맞는 실험실을 만들기 위해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는 교수들을 찾아가 만나고 있다.

장 박사는 “실험실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에 대한 기준이나 인식 부족때문에 사고가 난다”며 유효적절한 실험실의 설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대덕특구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민간 연구소의 연구실에서 잇따라 안전사고가 발생, 2006년 14건, 2007년 26건, 2008년 8월까지 33건 등이 발생했다. 때문에 장 박사의 ‘안전’에 관한 지적은 과학연구시설이 밀집해 있는 대덕연구단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실험실의 안전수준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안전 인식이 결여돼 국내 몇몇 프로젝트에 참가해봤지만 안전관련 예산이 제대로 반영된 곳이 없었다”고 아쉬워 했다. 정부발주 건물조차 안전관련 예산이 턱없이 낮게 책정돼 결국 필요한 시설을 넣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장 박사는 ‘안전’은 처음 실험실을 지을 때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 못 지어진 실험실에서 실험할 경우 연구원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한다”며 “간단한 문제라면 보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구조설계가 잘 못돼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다면 다시 짓는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안전은 실험실 설계에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

이어 “연구시설은 일반 건물과 달라 외형보다 내실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보기좋게 설계되더라도 기능 다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건물”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실험실 안전에 관한 인식이 굉장히 낮았다고 전했다. 그가 설계에 참여했던 미국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진상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신한 중국계 젊은 여자 연구원이 방사성물질에 오염이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NIH는 방사성물질을 다루는 규정을 대폭 강화했고 그가 설계를 맡을 당시 강화된 규정이 건물 설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 지금은 대학과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안전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 설계부터 함께 참가하는 등 ‘안전’관련 규정이 매우 엄격하다.

국내에도 안전관련 규정은 있지만 있다는 사실자체도 아는 설계자나 연구원들이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또 있는 안전 규정도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심지어 장씨를 초청한 실험실장비제조업체인 CHC랩에 규정을 물어오는 건축업자도 있었다.

장 박사는 “실험실 설계는 특수한 분야여서 과학과 건축을 모두 알아야 연구원들에게 가장 적절한 실험실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생활하며 실험실 설계 부문에서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까지 영주권이 없다. 장 박사는 “사이언티스트는 국경이 있지만, 사이언스는 국경이 없다”며 “어디에서 일하던 궁극적으로는 한국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