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벨기에 브뤼셀의 최대 명소다. 벨기에를 찾은 관광객 대부분이 이 볼품없는 동상을 보러 아침부터 몰려든다. 특별히 화려한 것도 아니고 규모가 큰 것도 아니다.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시간만 낭비했다"고 푸념할 법한 '단순 볼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조그만' 동상을 보러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그랑플라스 광장은 하루종일 북적댄다. 겨우 50㎝밖에 안 되는 동상이 한 해 7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뭔가.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폭설 속에서 죽어가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 한 소년이 오줌을 싸서 그 온기로 얼어붙은 아버지를 살려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또다른 설도 있다. 프랑스군이 브뤼셀을 침략해 불을 놓자 소년이 오줌을 싸서 껐다는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느와가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른바 '평화의 상징' 버전이다. 인근 쇼핑몰과 연결된 부셰 거리에는 오줌싸개 소년과 남매로 추정되는 '오줌싸개 소녀' 동상도 있다. 관광객들은 오줌 누는 소녀의 적나라한 모습(?)에 배꼽을 잡는다.

◆'1초 관광' vs '10분 관광'

'1초'와 '10분'.여행 가이드들이 관광명소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누는 것.그랜드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등은 보자마자 탄성이 나오는 '1초' 관광지다. '10분 관광지'는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처럼 역사적인 배경이나 뒷얘기를 갖고 있는 관광지를 뜻한다.

여행 산업에서는 '1초'보다 '10분 관광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랜드캐니언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반면 '10분 관광지'는 사람의 몫이다. '맛있는 이야기'를 담으면 평범한 곳도 관광 명소로 바꿔놓을 수 있다. 여행을 자주 다니고 학력이 높을수록 '10분 관광지'를 선호한다는 게 여행 업계의 설명이다.

유럽에는 '10분 관광지'가 도처에 널려있다. 역사,시(詩),전설,영화 등 모든 이야깃거리가 관광산업의 소재다. 독일 라인강변의 로렐라이 언덕이 그렇다. 로렐라이는 작은 언덕에 불과하지만 전설과 노래의 힘으로 관광 명소가 됐다. 일등공신은 절벽에 앉아 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불렀다는 소녀 로렐라이.뱃사람들이 노래에 매료돼 로렐라이를 바라보다 암초와 절벽에 부딪쳐 침몰했다는 게 이야기의 전말이다. 이 얘기는 1800년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설화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가 시인 하이네의 노래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도 유사한 사례다. 미라보는 프랑스 혁명 시기 정치가의 이름.이 다리는 센강에 놓여 있는 여느 다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한 편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네….'

관광객들은 이 시를 떠올리며 미라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시 속의 낭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다.

◆모나리자 뒷얘기 퍼뜨리는 루브르

'감동'과 '재미'가 있는 스토리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주요 국가들은 전략적으로 스토리를 확대 재생산한다. 송나라의 수도였던 중국 항저우는 최근 금나라의 침입을 막은 명장 악비(岳飛)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송나라 유물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테마파크도 만들고 이곳에서 역사 이야기에 노래,춤,곡예 등을 결합한 '송성가무쇼'를 선보였다. 이 공연은 금세 항저우 관광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악비의 스토리에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 가무를 적절히 결합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림을 둘러싼 뒷얘기들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을 감안해 박물관 사이트 등에서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것.

'모나리자 괴담'은 수십가지에 달한다. 루브르에 전시된 '모나리자'의 진위 논쟁이 대표적이다. 루브르 전시작이 가짜인 것은 아니지만 500년 전부터 '모나리자'로 불렸던 다빈치의 그림은 따로 있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루브르는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비밀'이 '호기심'을 낳는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모나리자의 희미한 눈썹도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논쟁 대상이다. 한 가지 가설은 원래 모델에 눈썹이 없었다는 것.당시 유럽에서는 '넓은 이마'가 미인의 기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예 눈썹을 밀어버리는 여성이 많았다는 얘기다.

◆순천, 갈대밭 살려 280만명 유치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이야기를 덧붙이는 작업에 적극적이다. 초기에는 '한류(韓流) 열풍'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자연을 테마로 한 '이야기 관광'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전남 순천은 지난해 도시 인구의 10배인 280만명을 유치했다. 갯벌을 생태습지로 되살리고 이를 '남도 삼백리 길'등의 스토리로 포장한 것이다. 갈대밭 안으로 관광객이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보행로를 설치하고 순천만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산꼭대기에 전망대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곁들였다.

지역의 설화와 전설을 활용한 제주도도 눈길을 끈다. 1만8000명에 달하는 전설속의 신(神)을 관광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여신(女神)들의 이름을 딴 거리도 생겼다. 이들 거리는 삼승할망(잉태의 여신),영등할망(바다와 바람의 여신),자청비(사랑과 변화의 여신),백주또(농경의 여신) 등으로 불린다. 구역별로 해당 여신의 조형물을 설치하고 여신의 이미지에 맞는 야간 조명도 만든다는 게 제주도의 계획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