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2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사를 마치고 13시간 만에 대검청사를 빠져나오던 순간,청사 앞에 있던 100여명의 취재진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뒤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검찰조사를 마친 소회와 혐의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받았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버스를 타고 대검청사를 떠났다. 장시간 밖에서 기다린 취재진은 허탈함에 탄식이 터져나왔다.

지난달 30일 노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떠나 검찰조사를 마치기까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세 차례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단 몇 마디에 불과했다. 봉하마을을 떠나며 "면목 없습니다. 잘다녀오겠습니다",검찰에 들어가며 "다음에 하죠",조사를 받고 난 뒤 "최선을 다해 (조사를) 받았습니다"였다.

노 전 대통령은 분명 국민에게 사과했고 조사에 대한 소회도 밝혔지만 이걸로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정작 국민이 관심을 가졌을 100만달러의 용처,혐의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검찰에 소환되기 전까지 자신의 사이트 '사람사는 세상'에서 각종 의혹에 대해 매번 입장을 밝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물론 검찰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많은 말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말을 최대한 삼가는 것은 조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침묵은 노 전 대통령 측의 우려처럼 언론의 억측을 만들어내 많은 국민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다음날 아침 신문을 받아든 국민도 검찰청사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을 기다리던 기자들처럼 허탈해하지 않았을까. 국민은 검찰조사에서 "아니다""모른다""기억이 없다"라며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 노 전 대통령이 유독 국민 앞에서만은 침묵한 데 대해 크게 실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검찰 조사 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요구했다는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