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한 조연배우의 자살로 시작된 장자연 사건은 연예계의 온갖 비리를 드러내는 대형사건으로 비화했다.

경찰 수사를 거치면서 연예계의 '어둠'을 고발하겠다는 여러 증언이 이어졌고, 연예계의 술과 성 접대 문화를 파헤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정치권에서는 연예매니지먼트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연예계의 시선은 갈렸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은 연예계의 비리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매니지먼트협회)는 극소수의 악행을 전체의 일로 매도하지 말라고 항변했다.

◇풍문으로만 돌던 연예계 어둠 일부 드러나

경찰 수사를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연예계의 접대 비리가 일부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장자연과 한때 같은 소속사였던 한 여배우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과 장자연이 함께 술 접대 자리에 불려나갔고, 그 자리에서 한 언론사 대표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또 장자연과 생전에 절친하게 지냈던 가수 김지훈도 방송에서 "장자연이 소속사로부터 '원치 않는 자리'를 요구받아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장자연의 소속사 전 대표 김모 씨는 장씨가 남긴 문서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그가 일본에 체류하면서 경찰의 소환요구에 불응하는 사이에 문서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각종 익명의 증언들이 봇물 터진 듯 나왔다.

그동안 연예계에서는 PD나 감독, 광고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인 여자 연예인들의 술자리 접대와 성상납에 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것이 루머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다.

◇정치권 '연예매니지먼트사업 법안' 발의

파문이 커지자 정치권도 움직였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지난달 말 장자연 자살사건으로 촉발된 연예계의 왜곡된 관행 논란과 관련,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의 계약방식과 부당거래 금지 원칙 등을 규정한 '연예매니지먼트사업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을 할 때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식 등록하도록 하고, 계약서에 불공정한 조항이 있을 경우 장관이 직접 시정을 권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예조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소속 탤런트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지난 15일까지 진행했다.

한예조는 통계 작업을 마친 후 이달 말께 설문 내용을 공개할 예정인데, 가해자의 실명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대신 한예조가 나서서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연예계의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정식으로 의뢰할 방침이다.

◇매니저 자격제, 표준계약서 등 대안 마련 움직임

국내 70여 연예기획사가 가입된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장자연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극소수 문제 매니저에게서 발생한 이번 사건을 매니지먼트 업계 전체의 일로 왜곡 확대시키는 보도로 인해 대다수 업계 종사자들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일부라 할지라도 이번 사건으로 술 접대와 잠자리 강요, 폭행 등 그간 연예계가 '과거의 일'이라 치부했던 불법적인 관행이 지금도 여전한 것으로 폭로되면서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매니지먼트협회는 "우리는 이미 연예 매니지먼트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매니저 자격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매니지먼트 업무를 5년 이상한 이를 대상으로 자체 심사를 거쳐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며 "또 연예 기획사와 연기자 간의 계약도 투명화하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 이전에 캐스팅 과정 등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맥을 동원하고 톱스타에 신인을 끼워넣는 방식 등의 음성적인 거래가 계속되면 접대 문화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