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유명한 영화 '러브 스토리'와 최근 방영된 국내 몇몇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질병이 백혈병이다. 젊은 주인공들이 시한부의 짧은 인생을 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선 백혈병에 대한 비현실적인 설정이 나와 쓴웃음을 짓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컨대 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과 그 생모와 시어머니 등 세 사람의 골수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해 여주인공이 시어머니에게 먼저 골수를 줬다가 괴로워하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골수가 일치할 확률은 2만5000분의 1에 불과한 데도 여주인공과 시어머니의 골수가 일치한다는 설정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부모와 자식 간에 골수가 일치한다는 것은 더욱 비현실적이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두 가닥의 유전자 가운데 한 가닥씩만 물려받기 때문에 HLA가 반만 일치하기 때문이다. 반면 혈연을 같이 하는 형제 간에는 산술적으로 HLA가 모두 일치할 확률은 25%에 달해 형제가 네 명이라면 한 명 정도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을 수 있으나 핵가족화가 진행돼 형제 수가 적어지면서 이마저도 어려운 경우가 흔해지고 있다.

백혈병은 크게 4종류로 나뉜다. 만성 골수성,만성 림프구성,급성 골수성,급성 림프구성이다. 급성은 치료하지 않으면 수개월 안에 사망한다. 만성은 수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경우다. 급성에선 주로 미성숙 세포(주로 母세포),만성은 좀 더 성숙됐지만 완전하지 못한 세포가 나타난다. 병든 백혈구의 세포 모양에 따라 골수성과 림프구성으로 나뉜다. 림프구성은 림프구(B세포,T세포)의 기능과 모양에,골수성은 혈구 혈소판 단구 등을 만드는 골수의 기능에 이상이 있다. 백혈병은 어떤 종류든 치료만 한다면 과거처럼 속수무책으로 수개월 만에 사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유전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경우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환자의 개별적인 발병원인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급성 백혈병은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발생하나 급성 림프구성은 소아에게서 훨씬 많다. 대개 빈혈 출혈경향 발열 등으로 발견되나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같은 급성이라도 림프구성과 골수성은 서로 다른 항암제를 사용하게 된다. 대개 항암제 주사 후 한 달여 동안은 골수가 기능하지 않고 백혈구가 감소하므로 수혈과 무균실 격리,항생제 투여로 버티며 이후에도 이런 치료를 반복하게 된다.

최근 치료율이 높아진 게 30~50대 청장년에서 90%가량 발생하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이다. 일부 드라마에서 백혈병 환자가 약을 복용하고 꿋꿋이 일상생활을 하는 게 나오는데 이런 상태가 만성 골수성이다. 환자의 90% 이상에서 '필라델피아 염색체'라 불리는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며 이로 인해 혈액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다. 평소 별 이상이 없다가 빈혈,피로,체중감소,식욕부진,복부팽만 등 경미한 증상이 나타나거나 비장과 간장이 커져 우연히 발견되기 때문에 조기발견이나 예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같은 '성인' 백혈병의 원인에 대해 일부 드라마에서 유전인 것처럼 표현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나 실제로는 유전이나 가족력과 별 상관관계가 없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최대 생존기간이 5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크게 만성기,가속기,급성기 3단계로 진행되는데 발병 초기 환자의 90% 이상이 만성기 상태이며 보통 3~4년간 지속된다. 이후 가속기를 지나면 골수의 30% 이상이 악성세포로 가득 차게 되고 하나의 미성숙 세포가 수백만 개의 쓸모없는 백혈구를 생산하는 급성기로 전환된다. 급성기는 유지기간이 3~6개월에 불과해 환자의 생존을 위협하며 이 단계에서는 골수(조혈모세포)이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

따라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한국노바티스의 '글리벡'(이매티닙),이 약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에는 같은 회사의 '타시그나'(닐로티닙) 또는 한국BMS의 '스프라이셀'(다사티닙) 등의 표적항암제를 조기에 써야 한다. 만성기에서 급성기로 이행되는 시기는 치료방법과 건강상태에 따라 수년~10년 이상의 개인차를 보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병에는 항암제화학요법,인터페론요법,골수이식이 주를 이뤘으나 2001년 이후 이들 먹는 표적항암제가 등장함으로써 정상세포를 파괴하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비해 만성림프구성 백혈병은 장노년층에서 주로 발생하며 별 증상 없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행이 느리며 완치는 어렵지만 치료제가 잘 듣는 편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김동욱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윤휘중 경희의료원 종양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