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입사 후 첫번째 프레젠테이션(PT)을 말이다. 보름여를 준비했지만 왜 그리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든지.

어금니를 악 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다리 힘은 빠지고,말투는 떨리고,등줄기엔 식은 땀이 흥건하고,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겨우 10분인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왜 그리 길고,평소 과묵하던 상사들은 무슨 질문을 그리 많이 하는지,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이 대리 같은 경험을 해봤다. PT는 직장인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공개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다. 반면 한번 실수하면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에 금이 갈 수 있어 위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싫어도 해야하는 게 PT다. 오히려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로라 하는 PT의 달인들은 도대체 어떤 비법을 갖고 있을까. PT의 달인들이 털어놓는 '비결'을 들어봤다.

◆스토리 텔링이 우선이다

오장욱 일진다이아몬드 BU장(차장급)은 인상적인 PT를 통해 승진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2007년 일진그룹은 전 계열사 과장급들을 상대로 특이한 승진 심사를 했다. 모든 과장들에게 '자신이 밟아온 커리어 패스(경력)와 조직에 기여한 정도를 설명하고 회사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계획인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3분,질의응답 시간은 2분으로 제한했다. 승진심사에 참가한 과장들은 40여명.자연스럽게 불꽃튀는 PT 경연장이 됐다. 이 중 가장 돋보인 사람이 오 BU장이다. 그는 우선 주어진 시간인 3분 안에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참가자 중 유일했다. 중언부언하거나 허황된 수식어 없이 핵심만 전달해 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말하는 프레젠테이션 요령은 별 게 아니다. '충실한 사전준비'가 최고다. 오 BU장은 "PT 구성을 먼저 한 뒤 발표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면 곤란하다"며 "먼저 스토리 텔링을 짠 다음 거기에 맞춰 PT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표 및 차트,그래픽 등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도표 및 차트가 준비되지 않을 때는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하되,전체적으로 구성 요소의 통일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에서 3D 그래픽을 썼다면 뒤에도 3D를 써야지 왔다갔다하면 오히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얘기다. 아울러 숫자가 많은 PT라면 차분해 보이는 푸른색 넥타이를,분석력이 중요한 PT라면 명석하다는 느낌을 주는 오렌지색이나 노란색 넥타이를 매면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청중과 함께하는 마당극,쇼를 하라

이연정 전 김앤에이엘 제작팀장.그가 PT에 대해 내린 정의는 '쇼(show)'다. 그렇다고 발표자만의 '원맨쇼'가 아니다. 발표자와 청중이 함께하는 '마당극'에 가깝다. 이를 위해선 청중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당연히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분 · 초 단위까지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청중들이 웃을 수 있는 시간 1~2초까지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아울러 순서를 잊지 않도록 키워드 10개 정도를 기억해두는 게 좋다.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절대 준비한 게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마당극이 성공하려면 초기에 청중들의 이목을 붙들어 매는 게 필수다. 이를 위해선 인상깊은 사례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메시지를 가진 유머로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생각할 만하다. 이 전 팀장은 한창 PT를 진행할 때는 청중 중 가장 높은 사람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높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장님,제 말에 동의하시면 박수 한 번 쳐 주세요"라고 말을 던져 보라는 것.만일 사장이 박수를 치면 나머지 참석자들도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경험이다.

◆일관된 키 포인트를 제시하라

한승훈 삼성전자 마케팅전략그룹 과장도 PT에 관한한 도사로 꼽힌다. 그만의 비결은 청중들이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PT를 진행한다는 점.아무리 복잡한 PT라도 키포인트를 3개 이내로 정리한다. 그래야만 청중들이 지루해 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경험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간이 길어지면 청중들은 따분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30분이 넘는 PT일 경우 5분 이내의 요약 PT 자료를 따로 만든다. 그림이나 글을 너무 많이 넣지 않고 글씨 크기도 가능한한 20포인트 이하로 줄인다.

한 과장은 "청중들이 발표 자료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발표자의 말을 듣고 PT 내용을 습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발표 중간 지겨울 수 있는 부분은 동영상으로 처리하거나 알기 쉽게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PT 발표에 앞서 회의장의 조명이나 좌석 배치 등을 미리 파악해놓는 것도 PT를 보다 여유롭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요령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라

황정일 KT 경영기획부서 매니저는 사내에서 알아주는 PT강사다. 본업 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신입사원과 영업담당자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의 A부터 Z까지 가르친다. 벌써 3년째다. 그런 만큼 황 매니저의 PT노하우는 '선수급'이다. 입사 초기부터 사업 수주를 위한 '경쟁 PT'를 수없이 해온 경험 덕분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PT의 비결은 리허설이다. 그는 "PT의 3개 요소로 전체 구조 · 스토리 전개 · 표현법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이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리허설을 빼먹어서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PT과정 내내 심리적으로 청중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는 점도 그만의 노하우다. 예컨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쉬운 질문을 중간 중간 던져서 듣고 있는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이도록 유도한다. 지나치게 특정 개념이나 기술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지 않으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대신 특정 상황에 따른 영향을 청중들로 하여금 예상토록 하는 것으로 PT를 끝내곤 한다. 그는 "청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미래를 생각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연상토록 하는 것이 성공적인 PT"라고 강조했다.

자신보다 상급자들이 PT를 듣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황 매니저는 "일부러 이들이 '질문할 여지'를 남겨놓는 요령도 필요하다"며 "모든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궁금증을 남겨놓으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고 보다 적극적인 PT가 된다"고 조언했다.

이정호/정인설/이상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