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의 여파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많이 늘어나는 가운데 불황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7년간 이어온 장사를 접기로 한 상인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6일 서울 마포구의 지하철 광흥창역 앞 임대건물 유리창에 `17년 장사 끝'이란 문구의 하얀 도화지가 나붙었다.

유리창 앞에서는 김명식(61.가명)씨가 상자와 비닐을 깔아 만든 좌판에 가방, 지갑, 숟가락, 칫솔 등을 놓고 손님들을 맞았다.

김 씨가 가방, 그릇 등 잡화를 팔기 시작한 것은 1992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수유리의 한 길거리에서 그의 `17년 가방 장사'가 시작된 것.
김 씨는 "가방은 소모품이 아니라서 한 달 정도가 지나면 한 동네에서 가방 살 사람은 다 산다"며 "한군데 오래 있으면 장사가 안 되니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럭에 물건을 싣고 다니다가 목이 좋은 곳을 발견하면 바로 장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경기도 수원과 의정부, 서울의 외곽지역을 옮겨다니며 장사를 계속했다.

그런 그가 17년간의 `방랑 장사'를 접으려고 한다.

식당이 망해 `빚쟁이'들에게 쫓겨도 보고, 자살 생각도 하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 씨이지만 매섭게 불어닥친 `불황의 칼바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완전히 망했다"며 한숨을 내 쉰 뒤 "하루 꼬박 벌어봤자 20만원을 버는데 원가 등을 빼고 나면 5만∼6만원 남는다"고 하소연했다.

점심값, 기름값, 자릿세 등을 빼고 나면 그나마 손에 쥐는 돈도 거의 없다.

장사가 잘될 때는 목 좋은 곳에서 하루 150만∼200만원도 벌었지만, 작년부터 본격화한 경기 침체의 여파로 `돈 잘 번다'는 얘기는 삽시간에 전설이 돼 버렸다.

김 씨는 "물건을 싸게 팔다 보니 손님들이 관심은 많이 보이지만 대부분 가방이 얼마인지만 물어보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며 "쌀값, 전기요금 등 생활비는 오르기만 하는데 매상은 줄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장사를 그만두면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라고 답한 김 씨.
가방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그의 얼굴에는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김연정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