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 검찰 고위급 인사가 1~2월 마무리되면서 로펌들 사이에'별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바로 전직 고위 법관 · 검사장 영입 경쟁이다.

예전에는 전직 고위 법조인들은 개인사무실을 내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엔 추세가 확연히 바뀌었다. 단독 개업은 눈에 띄게 줄었고 로펌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기 불황에다 어려운 변호사 업계 사정이 겹친 데 따른 실사구시적 트렌드다. '로펌 전성시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검찰총장 헌법재판소장도 로펌행


과거 전관들은 특정 형사사건만 맡아도 품위 유지비를 마련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형사사건을 맡아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복잡한 공판이 늘어나는 데다 형사사건도 국선변호인들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단독 개업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자문료 등 수임이 보장되는 로펌행이 보편화되는 양상이다.

검찰총장들도 시차를 두긴 하지만 결국 로펌행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송짱'으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송광수 전 총장은 작년 7월 김앤장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법무장관에 대한 항명으로 옷을 벗었던 김종빈 전 총장은 최근 법무법인 화우에 합류했다. 김앤장은 또 최근 에버랜드 CB(전환사채) 헐값 매각 사건을 심리했던 이혜광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구성원(파트너)변호사로 스카우트했다.

법무법인 광장은 최근 2년간 형사팀을 집중적으로 보강했다.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선우영 전 서울동부지검장, 박철준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이 광장에 새 둥지를 틀었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꼽히다 올 1월 함께 용퇴한 김태현 전 법무연수원장은 법무법인 율촌에 합류했다. 고문변호사 타이틀이 아닌 발로 뛰는'구성원변호사'로서다. 율촌은 형사팀 보강을 위해 올해 김 전 원장 외에 최정열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조정철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등 재조 출신 4명도 함께 영입했다.

법무법인 바른은 소위 '최강 전관'로펌으로 불린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김동건 전 서울중앙지법 · 고법원장,명로승 전 법무차관,박재윤 전 대법관 등 전직 고위 법조인들이 즐비하다.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 · 김승규 전 법무장관 · 이용우 전 대법관 등이 포진한 법무법인 로고스는 종교적 색채와는 무관하게 전관들이 선호하는 로펌이다.

◆붕어빵 로펌 양산 우려도

그러나 이 같은 추세가 과연 국내 로펌들에 긍정적일지는 미지수다.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기보다는 전관들의 인적 네트워크에만 의존하려는 업계의 고질적 관행은 법률시장 개방시대에 비춰 걸맞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붕어빵 찍어내듯 성격이 비슷한 로펌들이 중복해서 양산된다는 것.경영능력이 입증된 전문경영인 등을 영입하지 않고 유명세를 타는 전관 위주로 대표변호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거물급 전관들이 갖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물론 이는 일정 기간 분명히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약발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H로펌의 재조 출신 A변호사는"(거물급의 약발 등에 대해서는)개인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데,그저 얼굴마담인 경우도 있다"면서 "로펌에는 비슷한 경력의 변호사가 중첩되는 것이 결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로펌은 화려한 전관들이 포진해 있지만 경기 장기 침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자 화려한 이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률시장이 개방돼 외국로펌 분사무소가 들어오면 전관 출신 로펌의 경쟁력은 더 급속히 저하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근 외국법자문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외국 로펌 분사무소와 변호사들이 직접 국내에 들어와 국내외 기업들에 외국법에 대한 자문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제약이 많고 협정이 체결된 국가를 대상으로만 단계적으로 풀리게 된다. 그러나 결국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를테면 한 · 미 FTA의 합의 사항에는 FTA가 발효된 뒤 2년 안에 미국법자문법률사무소가 국내 로펌과 '특별협력약정'을 맺어 국내외법이 혼재된 사건을 공동 수임하고 수익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고,5년 안에 미국과 국내 로펌의 조인트벤처 형식의 합작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등 단계적으로 법률 시장을 개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향후 5~7년 내에 국내 법률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중소로펌이나 개인법률사무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주요 로펌들도 자문업무에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외국기업 관련 자문 시장의 빗장이 완전히 풀리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전관 중심 로펌은 구성원 간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연수원 수료 직후 줄곧 변호사로 활동한 J로펌의 10년차 B변호사는"고생 끝에 파트너변호사가 됐는데 느닷없이 들어와 위로만 쌓이니 솔직히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고질적인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법조 3륜(판사 · 검사 · 변호사)이 시차를 두고 뒤엉켜 공정한 직무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