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처방사 A씨(32)는 지난해 11월부터 서울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있는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회원들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 치중하는 헬스케어센터가 생기면서 대기업 못지않은 대우를 해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다. 헬스케어센터에는 A씨 말고도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요리사 홍보요원 행정직 등 약 240명이 일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더 만들 수 있는데…"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는 주치의와 전담 헬스매니저를 두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질병 교육,운동 처방,영양 관리 등을 해준다.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건강을 관리하자"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내 · 외국인을 합쳐 약 4만5000명이 이 센터를 다녀갔다. 다른 종합병원도 이 같은 예방적 건강관리 분야를 '블루 오션'으로 생각해 투자를 늘려가는 추세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면 시장이 형성되고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양질의 일자리도 저절로 뒤따르게 된다.

문제는 규제다. 건강보험법 의료법 등 얽히고 설킨 규제가 '건강관리서비스'라는 신종 보건의료산업의 비즈니스 형성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법상 건강관리서비스는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이 아니다. 이용하고 싶은 소비자는 많아도 저변 확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의료법상 어디까지가 '의료행위'인지 경계가 모호해 서비스 표준화도 어렵다.

개인의사와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자본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 영리법인은 병원 설립이 막혀 있고 기존의 비영리법인 지위로는 배당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보니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어렵다. 은행돈을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강남센터 윤대현 교수는 "인테리어 장비도입 임대료 등을 다 포함해 강남센터에 약 200억원을 들였는데 전액 은행 대출을 이용했다"며 "자기자본 없이 차입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비스산업 고용유발효과 제조업의 2배

선진 경제일수록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커지는 이른바 '경제의 서비스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제조업 비중이 줄고 서비스산업이 성장과 고용을 견인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5대 선진국의 서비스산업 경제성장 기여율은 1980년대 77.8%에서 1990년대엔 82.6%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56.4%이던 게 52.6%로 줄었다.

특히 일자리 창출에서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990년 54.8%였던 서비스산업의 고용비중은 2000년 61.2%,2006년 66%,2007년 66.7% 등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투자에 따른 고용 유발 효과도 제조업이 10억원 당 10.2명인 데 반해 서비스업은 19.9명(2006년 취업유발계수 기준)으로 2배 가까이 된다.

서비스산업의 성장 및 고용 기여율이 높아지려면 의료 교육 등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공공성 규제에 막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시장 형성'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방송통신이나 법률 회계 세무 등도 일률적인 진입장벽과 갖가지 사업행위 제한 규제들로 인해 독과점이 형성되면서 일자리 창출 여력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다.

한국의 서비스산업에서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도 · 소매업 음식 · 숙박업 등 노동집약적인 분야도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어서 내수 침체에 그대로 노출된 채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과거 외환위기 때는 이 분야가 제조업 실직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완충지대'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지난해 9월 리먼사태 이후 47만명의 자영업주가 일자리를 잃었을 정도로 고용 창출 여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너지는 자영업,대형화 기업화가 해법

대형화와 기업화를 통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부가가치를 높여야만 무너지는 자영업을 대체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형 할인점 출점 규제가 대표적이다. B할인점은 2006년 한 지방도시에 마트 건물을 다 지어놓고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용승인을 내주지 않아 6개월간 영업을 하지 못했다. C할인점은 법적인 하자가 없는 상업용지에 건물을 짓겠다고 건축허가를 신청했지만 지자체가 심의 자체를 거부해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무려 7년간 땅을 비워둬야 했다.

지자체들은 유형 무형의 출점 규제를 하는 명분으로 지역 상인 보호를 내세우고 있다. 2006년 중소기업청의 연구용역에 따르면 한 해 신규 출점한 대형마트의 고용인원은 1만8800명이었는데 중소유통업 매출감소에 따라 줄어든 일자리는 2만2800개로 추산됐다. 4000개의 일자리가 순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는 불안한 일자리 10개보다 경기의 부침(浮沈)에 영향이 덜한 질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 8개가 더 낫다"는 게 대다수 경제전문가의 지적이다.

할인점 출점에 따른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 할인점 1곳 출점시 본사 파견직원 이외에 약 600명의 직접 고용 창출 효과가 생길 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 활성화와 납품회사들의 고용까지 감안하면 매장 연면적 1000㎡ 규모의 할인점 출점으로 생기는 고용유발효과는 2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차기현/장성호/김평정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