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계와 재계 등 사회 각계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 정부와 정치권이 서로 처리를 떠넘기던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결국 정부입법으로 제출됐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주저한 정치권이 공을 정부로 넘겼고 '7월 이후 비정규직 대규모 실직'사태를 우려한 정부가 처리시한에 쫓겨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경제 현실 고려한 고육책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제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앞서간 현행 비정규직법이 불필요한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를 유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행 비정규직법에 따라 7월부터 100만명 이상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비정규직을 2년만 고용하도록 제한한 현행 비정규직법이 장기근속자 중심으로 일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산업계 전반에 비정규직의 실직과 잦은 교체,일자리 축소,도급 · 용역근로의 확산 등이 만연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현행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기간을 새로 설정하는 '고육책'을 마련하게 됐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려 현재의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고 차별시정제도 등의 실효성을 높여 정규직과의 격차를 좁혀 나간다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현행 비정규직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당초 기대했던 정규직 전환 효과보다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해고되는 본의 아닌 결과를 초래해 입법 의도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단순한 보완책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돼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는 보완책에 집중했다. 차별신청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 근로자의 차별시정 신청 기회를 확대한 것.차별신청사건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조사를 강화키로 했다. 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사업주가 부담하는 4대 사회보험료의 절반을 정부가 2년간 지원키로 했다.

◆개정안 통과는 첩첩산중



논란 끝에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개정안이 7월 이전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연내 개정안 발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올 들어서도 정부입법→의원입법→정부입법 식으로 입장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노동계와 야당이 결사 반대하고 나섰고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기에 양대 노총이 거세게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법안을 철회하라며 강경투쟁 불사방침을 밝혔고 한국노총도 "비정규직 고착화를 초래할 비정규직법 개정 강행을 규탄한다"며 법안 저지 입장을 내놨다. 여야의 대치정국도 변수여서 법안 처리가 4월 국회가 아닌 6월 국회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이영희 장관은 "정부가 법안을 내놓은 만큼 여당에서도 정부안을 존중하면서 논의를 전개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욱/유창재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