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서비스 시장 개혁을 위한 메스를 다시 잡았다.

영리의료법인 허용문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논의가 시작돼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의료비 인상이 우려되고 의료 양극화를 자극한다는 등의 반대의견이 많아 관철되지 못했다.

현 정부 초기에도 허용 방침이 발표됐지만 당시 미국 광우병 파동 등으로 연일 촛불집회가 벌어지는 등의 사회 혼란으로 정책의 추진동력을 얻지 못해 표류해왔다.

◇ "의료비 올라간다" vs "내려간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영리의료법인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허용시 과연 의료비가 올라갈 것이냐에 있다.

영리법인 허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자본이 대형 병원을 설립해서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로서는 진료비를 더 부담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비교적 건강보험 체계가 잘 돼 있어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비 부담을 덜 느끼는 상황에서 굳이 이를 흔들 수 있는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이어져 결국 건강보험이 민영화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영리법인이 고급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이는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할 리 없으며 따라서 국민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고소득층의 경우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이는 해외에서 비싼 달러를 들여 받을 것을 국내에서 받는 셈이고 일반인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건보 급여를 적용받아 낮은 부담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정부는 의료법인간 경쟁이 촉진되면 오히려 진료비가 낮아질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도 임플란트나 성형수술 등 비보험 치료비가 영리 체인병원의 박리다매 전략에 의해 크게 낮아진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 의료 양극화 심해질까
영리의료법인 반대론자들은 초고가의 의료서비스가 등장하면 이를 이용하는 고소득 계층과 돈이 없어 그러지 못하는 서민간에 양극화가 심화될 것을 우려한다.

또 영리의료법인의 경우 별로 '돈이 안되는' 서민환자들을 푸대접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는 영리법인이 기존 병원과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진료를 회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회피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법인이 아닌 개인은 영리목적으로 병원이나 의원을 설립해 운용할수 있고 실제로 전체 병.의원의 90% 이상을 개인이 영리목적으로 운영하지만 이들이 서민들을 푸대접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재정부는 영리의료법인이 고가의 진료를 내세우면 서민들이 이를 기피할 수는 있어도 의료기관이 의료급여 환자나 저소득층 건강보험 가입자를 외면할 이유는 없다면서 의료 양극화 문제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와 공공의료기관 확충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일부에서는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할 경우 국민건강보험법상 의료기관의 당연지정제가 폐지될 것을 우려하지만 이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영리의료법인이라고 할지라도 건강보험 급여를 포기할만한 의료수요는 크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당연지정을 거부하는 사례는 극히 적을 것이라고 재정부는 지적했다.

◇ OECD 국가중 3개국만 불허
의료영리법인에 대한 허용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갈라져 있다.

환자를 빼앗길 가능성이 많은 개인의원 사이에서는 반대 의견이 많고 중형 병원들은 추가자본을 유치해 대형 병원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이다.

국내 대형 종합병원들은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의료관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의 경우 허용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재정부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허용 시기는 좀 더 여론수렴이 이루어지는 내년 정도로 미룰 것을 주장한다.

재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일본과 네덜란드 뿐이라며 개혁을 미룰 경우 추진이 더 힘들어지므로 연내에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대다수 선진 복지 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허용된 제도로 우리도 개인 의사 자격으로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경우 영리목적이 대다수다.

우리나라의 규제가 이처럼 심하다보니 싱가포르나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은 국제적인 의료허브를 목표로 해외 환자를 적극 유치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경쟁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의료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부유층은 병이 나면 해외로 나가 치료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서비스 수지는 2006년 이후 3년 연속 연간 6천만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중이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와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 법인에 한해 영리법인이 허용돼 있지만 아직 국내 자본은 규제에 막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재정부는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우 생산유발 잠재력이나 고용창출 능력도 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진입규제를 풀어줄 경우 의료산업 발전은 물론 국가 경제적으로도 고용이나 산업생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기자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