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중상해를 입힌 운전자도 종합보험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다음날인 27일 관련 업계와 경찰, 일반시민들은 대부분 난처하거나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일선 경찰 '혼란' = 이번 헌재 결정으로 업무가 늘어나게 된 경찰들은 갑자기 법 조항이 바뀌게 돼 혼란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북경찰서 교통조사계에 근무하는 안모 경위는 "중상해가 어느 정도 다친 것을 말하는 것인지 등 규정이나 정확한 지침이 내려오지 않은 상태라 일선 업무에 혼선이 있다"며 "일단 사고가 접수되면 조사는 조사대로 하고 형사처벌 문제는 지침이 있을 때까지 보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 경위는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우리 업무야 당연히 늘어나겠지만 운전자의 주의의무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도봉경찰서에 근무하는 김모 경위는 "개인적으로는 일단 잘 된 결정이라고 본다.

내 가족이 다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느냐. 다친 사람들을 위해서도 잘 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중상해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지 않아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노원경찰서 우모 경사는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며 "예를 들어 트럭이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아이를 들이받았다고 하자. 만약 성장판을 다쳐서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해도 지금까지는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형사처벌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운전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경우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단서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보험사기 등을 통해 이번 결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운수업계 '반발' = 택시와 버스업계는 운전자가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의 임승운(49) 정책국장은 "요새 손님도 없고 기름값도 오르고 있어 가뜩이나 일도 안 되는데 이런 소식까지 접하니까 기사들이 일할 의욕이 꺾인다"며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 형사처벌까지 더한다는 건 우리들을 죽음으로 몰아내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임 국장은 "경찰청은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조만간 경찰청에 대안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버스노조 오맹근(53) 정책실장은 "버스기사들은 일반 자가용 운전자들과 달리 하루에 18시간씩 운전대를 잡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고를 낼 위험이 크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 실장은 "배차시간이 부족한 면도 있고, 정체가 심했다가 풀릴 경우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과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결정이 나면 기사들에게는 엄청난 중압감이 온다"고 덧붙였다.

이어 "만약 사고를 내고 구속이 된다면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 피해자와 형사합의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나 벌금도 만만치 않게 늘어날 것"이라며 "임금 몇 푼 늘어봐야 다 소용없어는 것 아니냐"고 했다.

◇ 시민 "부담" vs "환영" 교차 = 일반 운전자들은 헌재의 결정이 운전자들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며 부담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이모(32)씨는 "과속이나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은 물론 운전자의 고의성이 있긴 하지만 사실 다른 범죄와 다르게 부득이한 경우에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이걸 갖고 형사입건한다는 건 좀 부당하다"고 비판을 제기했다.

이씨는 "물론 이렇게 되면 운전자가 좀 더 조심하게 되고 사고도 줄어들긴 하겠지만 순간 실수나 방심으로 졸지에 범법자가 될 수 있으니 운전하기가 부담스럽다"고 얘기했다.

또 "사실 비싼 돈 주고 보험 드는 이유 중 형사 면책도 일부분 있는데 보험 들어도 소용없다고 하면 굳이 비싼 돈 주고 보험 들 필요가 있느냐"고 덧붙였다.

구모(36)씨도 "아침에 기사를 보고 출근을 하는데 운전하기 겁이 났다.

고의가 아니라 한 순간의 실수로 사고를 내는 건데 운전자 권익을 좀 보호해줘야 하는게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회사에서 잘린다.

교통사고 하나로 집안을 완전히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모(30)씨는 "중상해 범위도 애매하고 내가 잘못하든 다른 사람이 잘못하든 사고가 날 수 있는건데 경찰까지 가서 조사받고 법정까지 가는 게 번거롭고 소모적이다"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법이 필요한 거지 사람들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까지도 법적 잣대를 들이대려는 건 안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장애 등의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헌재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측은 "위헌 조항은 가해자를 보호하는데 치중한 법으로 형사처벌에 대한 해방감으로 운전자의 안전불감증을 유발해왔고 일부 인명경시 풍조도 불러왔다"며 "이번 결정이 교통사고 피해자가 억울한 일이 없도록 보호하고 교통사고 없는 살기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김재홍 기자 san@yna.co.krpitbul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