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기업 홍보용 파티 제작 전문업체인 '파티즌닷컴' 사무실.국내 최초의 파티플래너로 알려진 이 회사 이경목 파티사업팀 전무(36)가 팀원들과 모여 최근 의뢰받은 기업체의 홍보 파티 컨셉트 논의로 정신이 없다. 먹고 마시며 노는 게 연상되는 '파티'를 논하는 자리.그렇지만 풍선이나 무대장식,음향장치처럼 '파티'를 떠올릴 만한 물건은 없다. 서류 뭉치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만 수북이 쌓여 있다.

일반 기업체 사무실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한 분위기에 약간 실망한 기자의 마음을 눈치챈 듯 이 전무가 웃으며 먼저 말을 꺼낸다. "파티는 하나의 인맥 형성의 장,정보 교환의 장으로 개개인의 능력과 인맥을 개발하는 장입니다. 그래서 파티플래닝은 그냥 떠들면서 놀고 먹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기획회의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거든요. "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파티플래닝의 세계를 이 전무를 통해 살펴봤다.

▶국내 1호 파티플래너로 알고 있습니다. 파티플래너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있었습니까.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하다 우연히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눌러앉은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가장 호기심있게 접한 게 파티문화였지요. 노는 것도 노는 것이지만 파티에서 친해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더군요. 파티 주최자는 한 명인데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 방사 형태로 인연을 쌓아가는 게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경우 학연이나 동아리 외에는 새로운 인맥을 쌓을 기회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귀국해서 친구 5명과 함께 좋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형태로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1999년 9월께로 기억되는데요. '더 퍼스트 크리스마스 인 더 월드'라는 이름으로 파티를 열었죠.카페를 빌려 가을인데도 눈송이도 만들고,캐럴도 틀고,에어컨도 하나 더 장만해 틀고 하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해봤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달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었죠.참석자도 처음 50명에서 80명,100명으로 늘었습니다. "

▶처음부터 파티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셈이네요.

"그때까지는 파티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로 파티를 열곤 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2001년 화장품 회사인 샤넬에서 '알루르( Allure)'라는 향수를 소개하는 파티를 만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파티를 하는 곳이 많지 않던 때여서 저희 파티에 고정으로 참석하는 분들을 화장품 회사에서 원한 측면도 있습니다. 샤넬의 홍보 파티를 계기로 펀딩도 받고 '앤케이파티즌'이란 법인도 설립하면서 파티플래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그 뒤 파티플래너로 자리를 잡았나요.

"아니죠.사업이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는데 성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처음엔 오류 투성이였죠.홈페이지 제작에 돈을 쏟아붓다가 투자금을 다 날려 버리기도 했습니다. 6개월간 신용불량 상태로 지낸 적도 있습니다. 2년간은 파티업계를 떠나 있어야 했고요. 실패 이유를 되짚어본 뒤 2004년 '파티즌닷컴'이란 회사를 차렸습니다. "

▶지금까지 진행한 주요 파티는 어떤 게 있습니까.

"일반인들이 친목으로 모이는 소셜 파티를 제외한 기업 홍보 위주의 컨설팅 파티 중 기억나는 것으로는 'XTM'이라는 케이블방송 론칭 파티가 있습니다. 핼러윈 파티 형식으로 진행했죠.또 루엘이라는 남성 잡지를 론칭할 때는 카지노를 테마로 한 파티를 열었고요. 실제로 참석자들에게 칩을 나눠주고 전문 딜러도 불러 게임 형식으로 카지노장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컨설팅 회사 엑센츄어의 내부 파티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마련했습니다. 무대를 라디오 세트로 구성하고 시그널도 '별밤'처럼 만들었죠.이 밖에 하이닉스 내부인재 교육 파티라든지, 담배 '시마' 론칭 파티,제일모직 IBM 등의 내부파티와 송년파티,신년파티 등을 각 행사의 컨셉트에 맞춰 진행했습니다. "

▶파티플래너란 직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주시죠.

"보통 파티플래너라고 하면 파티장을 꾸미는 스타일리스트나 플로리스트 혹은 요리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런 역할보다 오히려 기획자에 가까운 게 파티플래너죠.파티의 전체적인 컨셉트를 잡고 제안하는 작업이 주가 됩니다. 이에 따라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나 화술,기획력이 중시되죠.푸드 스타일리스트나 플로리스트,공연팀,음향팀 등 모든 파트너들의 협업이 잘 돌아가게 총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

▶가장 신경쓰는 작업은 어떤 부분인가요.

"파티 컨셉트를 잡는 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컨셉트를 잡기 위해 항상 인터넷과 신문,잡지 등을 보면서 고민하지요. 이와 함께 의뢰한 회사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사에 대한 조사부터 회사의 비전과 선호하는 색상,과거에 어떤 행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다 파악해야죠.일단 컨셉트가 잡히면 기획안을 마련하고 파티 준비에 들어갑니다. 아무리 큰 파티라도 준비하는 데 두 달이 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 달 안에 대부분 작업이 이뤄집니다. "

▶'컨셉트를 잡는다'는 의미를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핼러윈 파티를 예로 들지요. 사람들은 그냥 가면 쓰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된 파티를 위해서는 핼러윈 파티를 시나리오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케이블TV 개국 행사를 위한 핼러윈 파티의 경우 채널 컨셉트가 '익스트림'이다 보니 핼러윈 파티도 컨셉트를 '끝까지 가보자'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쉴새없이 프로그램을 돌렸지요. 파티 참석자들을 악마편과 천사편의 두 종류로 나눠서 전투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데요. 이런 때에도 기업들이 파티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경기를 탑니다. 전에는 커뮤니티 파티를 포함해 연간 40~50회를 했습니다. 물론 요즘도 의뢰는 한 달에 5~6건이 들어오긴 합니다. 그러나 실제 성사율은 떨어져요. 이미 약속한 파티가 미뤄지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전체적으로는 파티가 활성화 트렌드를 띠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외국 기업이나 주류,화장품,패션 회사 위주로 했지만 2005년부터는 기업 내부행사가 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조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파티를 도입하고 있어요. "

▶파티를 열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요.

"그럴 듯한 파티 같은 파티를 하려면 비용이 100명 기준으로 3000만원가량 듭니다. 1인당 30만원꼴인데 식사와 장소 대여비,공연비 일부를 포함한 금액이죠.여기에 파티플래닝 회사를 위한 일정 정도 기획비가 추가됩니다. 단순 계산하면 적은 비용은 아니지요. 하지만 트렌드 자체가 명확한 타깃이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광고를 집행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파티는 명확한 타깃을 정해 놓고 합니다. 대상 집단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만큼 헛되게 쓰는 돈은 없습니다. 요즘 기업체는 파티 참가자의 나이,승용차 모델,연봉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 파티를 기획할 것을 요구합니다. "

▶실패한 사례는 없었나요.

"예전에 소니뮤직에서 일본 대중음악인 '제이팝'을 주제로 파티를 의뢰했습니다. 일본어로 한국에서 공연하고 일본 가수도 초빙했어요. 500명이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달랑 80명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에 제이팝을 좋아해 파티에 참석할 만한 집단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채 파티를 진행한 게 실패 요인이었죠."

▶파티플래닝 시장을 개척하면서 애환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도 파티플래너가 다들 '딴따라'인 줄 아는 게 좀 억울합니다. 초반에는 '노는 애','나이트 삐끼','음식 만드는 사람','풍선 부는 사람'이라고 폄하받은 적도 많습니다. 비즈니스를 연결해주고 창업도 안내하고,결혼의 장이 되기도 하는 게 파티인데요. 그런 파티를 만드는 파티플래너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죠.지금도 파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도 어려운 점 중 하나입니다. "

▶직업으로서 파티플래너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수익성이 괜찮으니 지금까지 버텨왔지요. 개인차는 있겠지만 파티플래닝에 발을 담근 이후 3년차를 넘어가면 파티를 A부터 Z까지 다룰 능력이 생깁니다. 파티플래너당 한 달에 1~2건 정도 파티를 다룰 수 있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합니다. 실제 연봉 5000만원 이상 받는 파티플래너가 적지 않습니다. "

글=김동욱/사진=강은구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