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 "강풍 타고 불길이 배바위쪽으로 들이닥쳤다"

"불길이 확 번지자 순간 아비규환이 됐어요."

9일 저녁 '정월 대보름 억새 태우기' 행사가 열린 경남 창녕군 화왕산 정상 부근에서 바람을 타고 치솟아 오르는 불길을 피해 대피하던 등산객 4명이 벼랑에서 추락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으며 30여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화왕산 정상 757m 부근에 차려진 본부 뒤편 배바위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동아리 동료 8명과 함께 화왕산을 찾은 이윤기(65)씨는 "달집살기를 한 뒤에 정상적으로 불을 질렀으나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면서 불길이 방향을 잃은 채 미친 듯이 배바위쪽으로 들이닥쳤다"고 말했다.

오른쪽 손에 화상을 입은 이씨는 "우리가 있던 곳 앞에 5m 너비의 방화선이 마련돼 있어서 설마 여기까지 불이 올라올까 싶었는데.."라며 "같이 갔던 동료 1명이 연락이 안 돼 걱정된다"며 울먹거렸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안재훈(53)씨는 "배바위 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집사람의 손을 잡고 불 속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배바위 뒤편은 낭떠러지라서 오히려 불길 속을 뛰어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배바위 부근에서 산 아래쪽으로 50여m 지점에 있었다는 이모(28)씨는 "억새 태우는 장면을 동영상 촬영 중이었는데 불길이 갑자기 크게 번지자 뒤쪽에서 사람들이 '사람이 떨어졌다'며 소리를 질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불이 크게 번지면서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과 검은 연기가 산 정상을 뒤덮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만 들렸으며 완전히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본부 위쪽에 있던 최모(45)씨는 "달집살기를 한 뒤에 억새에 불을 붙이자마자 불길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확 번졌다"며 "불길이 크게 번지자 뒤쪽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고가 나자 본부는 "안전사고가 났습니다.

등산객 여러분은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하산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했으나 사고와 불길을 본 등산객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등산객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방화선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작은 손전등이나 앞 사람의 인기척에 의지해 간신히 이동했다.

김모(40.여)씨는 "안전요원들이 화왕산 산성 주변 곳곳에 물통을 들고 만일에 대비했지만 큰 불이 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화염을 잡기엔 부족해 보였다"고 말했다.

(창녕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eng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