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1시40분께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위원장 직무대리 진영옥 부위원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회견장에 운집한 기자들의 카메라 불빛 세례를 받으며 회견석에 앉은 진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노조 집행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말로 침통한 심정을 드러낸 뒤 천천히 준비해온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진 부위원장이 회견문을 읽어가는 동안 옆에 서 있던 우문숙 대변인을 비롯한 노조 관계자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묵을 유지했고 피해자와 노조원, 국민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대목에서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더 깊숙히 파묻었다.

핵심 간부의 성폭력 파문으로 결국 지도부 총사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민주노총 노조원들은 평소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듯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노조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숨기지 못했다.

특히 2005년의 비리사건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땅에 떨어진 노조의 위신과 신뢰를 채 회복하기도 전에 또다시 성폭력 파문으로 지도부가 불명예 퇴진한 데 대해 일반 노조원들이 받은 충격과 자괴감은 컸다.

한 노조원은 "사건이 불거지자 일부 노조원들이 지도부 사퇴 얘기를 꺼내긴 했어도 소수였다"며 "여론이 심상치 않음은 알고 있었지만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전원이 사퇴하게 될 정도로 사태가 발전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노조원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노조 전체가 매도당하고 지도부까지 사퇴한 현 상황이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며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보면서 민주노총이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노조원은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제 개정안 저지 등 현안들이 산적한 가운데 지도부가 총사퇴함으로써 노조의 입지가 축소됨은 물론 노조활동 자체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한 노조원은 "임시국회에서 노동 관련 법안들이 졸속 처리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투쟁의 동력 저하가 불가피하게 됐다"며 "지도부 공백을 빨리 메워 앞으로 있을 각종 현안에 대처할 힘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노조원도 "앞으로 구성될 비상대책위원회는 최악의 경기불황 여파로 노동활동이 크게 위축된 현실을 직시하고 도덕성과 국민 신뢰 회복은 물론 노조의 핵심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