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한국노총이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획일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주 현장 방문과 간담회 등을 통해 노동 현장의 실태를 파악해본 결과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8일 "당사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사측 노무담당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니 업종의 특성,숙련도,근속 연수,연령 등에 따라 비정규직보호법의 영향에 대한 인식이 천차만별이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근로자 입장 제각각

지난 7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열린 비정규직 근로자 간담회에서 서울의 한 병원 임상병리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큰 차별도 없고 그동안 계약을 반복 갱신하며 일해왔는데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최근 계약이 종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이 안 돼도 좋으니 4년으로 기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기간 제한을 폐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견 기업에서 운전사로 일해 온 한 근로자도 "10년간 직장에 다니다 최근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며 "나는 비정규직법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반면 한 공기업의 근로자는 "오는 7월에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는데 노동부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회사가 주춤하는 분위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20대의 한 제조업체 근로자는 "2년도 좋고 4년도 좋으니 직업 개발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높거나 상대적으로 젊은 근로자들은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현행법을,단순 노무직이어서 전환 가능성이 낮거나 연령이 높은 근로자들은 사용 기간 연장이나 폐지를 지지했다.

◆유연성 높인 새 개정안 마련해야

이달 5일 사측 노무담당자들과의 간담회에선 업종의 특성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많았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숙련도의 관점에서 볼 때 2년보다는 업무에 익숙해지는 4년 후가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그러나 통신업체의 노무담당자는 "업무교육에 들어가는 훈련비를 뽑는 데 2년은 짧기 때문에 2년으로 제한하는 게 정규직 전환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용 기간 제한 자체가 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를 모두 코너로 몰고 있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이에 따라 당정은 4월 임시국회 때까지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새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2년으로 사용 기간이 제한돼 있지만 3회까지 계약을 갱신할 수 있고 산별 단체교섭으로 기간을 달리 정할 수 있는 등 유연한 법체계를 가진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유창재/박진규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