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보험사기가 늘어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연쇄살인 피의자 강호순이 7억원 이상의 보험금을 타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를 모방한 보험사기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고 있어 생계형 보험사기 증가도 예상되는 시점이다. 금융감독원 등 관련기관도 보험사기 인지시스템 점검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보험금 지급건 모니터링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강씨는 24건의 보험 가입으로 7억2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이 중 각종 화재로 받은 보험금만 5억6000만원에 달한다.

이 같은 '보험 쇼핑'은 당시 보험업계 전산망이 공유되지 않아 보험 중복가입이 가능했던 데다 보험사는 의혹이 있어도 경찰이 보험사기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화재보험 등은 전소되면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강호순은 2005년 처가에 불이 나기 직전 안양시에 있는 안양타워빌딩 내의 보험사 7~8곳을 모두 돌며 보험쇼핑을 했다"면서 "당시 보험사기 혐의가 있어 고발을 통해 경찰이 6개월간 조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보험금이 나갔다"고 설명했다.

강씨의 보험사기 행각이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면서 모방범죄가 부를 가능성도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보험사기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과거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일정 시차를 두고 보험사기가 급증한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언더라이팅(보험계약 심사)을 강화하고 자체 조사전문팀(SIU)을 보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A생명은 사고조사 파트를 통해 고객청구건 등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보험금 청구건에 대해 보험가입 시기와 청구 시기,타사 가입 여부 등을 분석해 재검증하고 있다. B생보사도 이미 보험금이 지급된 건에 대해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생명보험협회를 통해 사기혐의자 선정기준을 마련해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위,건강보험자료 활용 추진

보험사 혼자 보험사기를 막기란 불가능하다. 보험사는 수사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자체 조사팀은 단지 혐의가 짙은 사고에 대해 기초 증거자료 수집이나 분석 등을 통해 수사기관 업무를 지원할 뿐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보험사기 조사에 건강보험가입자의 질병 정보를 일부 활용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금융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진료사실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보험업법 개정안에 포함시켰으나 보건복지가족부의 반대로 삭제된 바 있다.

금융위는 조만간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유관부처와 함께 보험사기 조사 강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 가입자가 허위 또는 과다 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는지,의료기관과 공모해 보험사기를 저질렀는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과거 진료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2007년 적발한 보험사기 규모는 2045억원(3만922명)으로 보험사기 추정 규모 2조2000억원의 9.2%에 불과했다. 2005년 1만9274명이던 보험사기 혐의자 수는 2007년 3만922명으로 급증했으며 2006년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 추정액은 2조원을 넘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개인정보는 수사기관 이외에는 누구도 활용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