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연쇄살인범의 범죄행위가 밝혀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사이코패스(psycho-path)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를 '고장난 인격'의 소유자라고 부른다.

그는 외견상 인간의 가면을 썼을 뿐 속내는 보통사람과는 전혀 딴판이다.

심리학자 폴 바비악과 로버트 D 헤어는 공저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에서 사이코패스가 전체 개체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 정도라고 말한다.

길 가는 사람 100명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라는 거다.

교도소 수감자로 보면 훨씬 많아져 무려 15%가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학대 행위를 저지르는 배우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적 인격의 소유자란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모골이 절로 송연해진다.

도대체 사이코패스는 누구일까? 그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내어 희생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뭘까? 이를 소홀히했다가는 무자비한 '독사 인간'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

바비악과 헤어의 말처럼 가면 뒤에 감쪽같이 숨은 사이코패스가 직장에서도 멋진 양복을 걸친 채 버젓이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로 이 분야의 개척자인 허비 클렉클리는 1941년 '멀쩡한 가면'을 출간해 화제가 됐다.

클렉클리는 사이코패스 연구의 고전인 된 이 책에서 이중인격자의 특징을 하나하나 잡아냈다.

겉보기로는 멀쩡할 뿐 아니라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희생자들이 깜박 속아넘어가는 이유다.

보통의 정신병자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곧잘 드러내고 환각이나 비합리적 생각에 사로잡히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불안ㆍ초조 없이 자신을 합리적으로 잘 통제한다.

게다가 상당한 지적 능력도 갖고 있어 전문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적지않다.

그래서 능력있고 친절한 인간으로 주변의 호감을 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월감과 오만함에 사로잡힌 채 감정이 극도로 메말라 있다.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적이며, 책임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삶의 목표나 계획 따위도 세우지 않는다.

거짓말과 속임수에 아주 능해 무심코 대했다간 속아넘어가기 딱 좋다.

내면 감정이 없다 보니 자신의 범죄행위도 태연하게 재연할 수 있다.

동정심이나 양심의 가책, 죄의식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이런 사이코패스의 특성은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환경이 결합해 나타난다는 게 일반적인 결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선천적 요인. 사이코패스의 특성들이 유전자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연구 결과들은 이구동성으로 밝힌다.

반사회적 행동과 같은 후천적 배경과 만날 때 이런 선천적 요인이 극대화해 발현된다는 거다.

이들은 다종다양한 능력을 바탕으로 희생자 사냥에 나선다.

무엇보다 상대의 약점이나 단점을 재빠르게 읽어 이용가치가 있을 경우 매력적인 태도로 접근해 신뢰를 얻는다.

첫인상이 좋기 마련인 이들은 매너와 말솜씨까지 화려하다.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변신해 상대를 조종하는 교활함은 기본. 그러다 결정적 기회가 오면 가면을 벗고 가차없이 본능의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는 인간 포식자들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사이코패스의 사전에는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없다.

일이 잘못되면 다른 사람이나 환경, 운명과 같은 외부조건으로 책임을 돌리는 덮어씌우기의 달인들이다.

임기응변능력이 워낙 탁월해 믿거나 말거나 '결백'을 주장하는 거짓 증거는 얼마든지 태연히 들이댄다.

피해자와 피해사실이 명확히 밝혀져도 자기 잘못이라기보다 피해자 탓으로 돌려버릴 만큼 뻔뻔하다.

이런 사이코패스가 끼어들면 당사자의 삶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고 바비악과 헤어는 충고한다.

그래서 이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 불행을 사전에 막는 게 현명하다는 거다.

즉, 모르면 당한다.

훌륭한 방어책은 늘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 상식에 입각해 판단하라는 얘기다.

자기 감정의 자동입력장치와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두는 것도 요긴하다.

사이코패스는 상대의 약점과 부족함, 두려움을 간파해 이용하는 명수여서다.

뒤늦게 실상을 깨달았더라도 과감히 관계를 끊어야 더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한번 맺은 관계를 운명으로 여겨 계속 유지한다면 그건 제발로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일이다.

요컨대, '기생 인간'인 사이코패스는 상대를 분석ㆍ평가한 뒤 인상관리와 속임수를 동원해 접근해 마지막 단물까지 모조리 빨어먹고서는 더이상 쓸모없어지면 미련없이 버리고 떠난다.

때로는 연쇄살인범처럼 변태적 잔혹행위마저 저지른다.

유혹은 늘 달콤하다.

그러나 방심한 채 미끼를 덥석 물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가 되기 쉽다.

최악은 사이코패스의 인질인 피해자가 문제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자책하는 일이다.

육체적ㆍ심리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숨기지 말고 빨리 외부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 가지 경계할 것은 정황이 비슷하다며 섣불리 사이코패스 딱지를 붙이는 일. 자칫 잘못했다간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어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혼동하지 말자는 거다.

사이코패스의 거짓말과 보통사람의 거짓말은 근본부터 다르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연쇄살해범 유영철과 강호순의 사례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키는 계기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