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여대생 노모(당시 21세) 씨 피살사건도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38)의 짓일까.

강호순은 경찰에 7건의 연쇄살인 범행을 털어놓았지만 아내와 장모가 숨진 장모 집 화재사건의 방화 혐의와 함께 노 씨 피살사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씨 사건에 대해 경찰은 일단 그가 자백한 연쇄살인사건의 최초 발생 시점인 2006년 12월로부터 2년 이상 앞서 시차가 있고 일부 범행 수법이 강이 저지른 것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일련의 사건과 묶어서 보고 있지는 않다.

경찰은 그러나 노 씨가 실종된 사건 정황이 강호순이 자백한 사건들과 유사해 이 사건도 강의 범행이 아닌지 재수사하고 있다.

노 씨는 2004년 10월 27일 오후 8시35분께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돼 같은 해 12월 12일 실종 지점에서 5㎞쯤 떨어진 정남면 보통리 야산에서 반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교외 버스정류장에서 사라졌고 유골로 발견된 시신은 옷이 벗겨져 있었다는 점이 강호순이 저지른 연쇄살인사건의 수법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점이 강호순의 수원 당수동 축사와 멀지 않고 유류품 발견 지점으로 미루어 본 범인의 납치 뒤 이동 경로가 다른 사건 범행이 이뤄졌던 비봉면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강호순이 7건의 연쇄살인을 자백하면서 밝힌 범죄 동기는 역설적으로 그가 노 씨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을 내포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그는 2년 사이 7명의 부녀자를 연쇄적으로 살해한 동기로 '화재로 아내를 잃은 뒤 여자들에 대해 막연한 살해 충동이 생겼다'는 점을 내세웠다.

경찰은 그의 이런 범행 동기가 자백한 연쇄살인의 1차 발생 시점보다 1년여 앞선 2005년 10월 발생한 처가 화재사건을 방화가 아닌 것으로 전제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지어낸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강호순이 방화 혐의에서 벗어나려고 집착하는 것은 보험금으로 받은 4억8천만원을 자신이 부양해 온 16살과 14살짜리 두 아들을 위해 지키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는 게 경찰의 추측이다.

방화로 밝혀질 경우 보험사기에 해당돼 보험금을 몽땅 되돌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을 전제하고 보면 강호순은 2005년 처가 화재 이전에 부녀자 살해 전력이 없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결국 노 씨 살해를 부인하게 됐다는 추론으로 연결된다.

자신이 내세운 범행 동기가 확고해 보이려면 아내를 잃고 '충격을 받은' 처가 화재 이전에는 부녀자 납치 살해와 같은 끔찍한 범죄와 거리가 먼 정상인이어야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기 때문이다.

이미 자백한 7건의 범죄만으로도 극형을 피하기 힘든 상황에서 유독 방화와 노씨 살해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까닭으로 볼 수 있다.

경찰은 이런 가정에 대한 해답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노 씨의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 경찰은 시신에서 1㎞쯤 떨어진 곳에서 찾아낸 노 씨의 청바지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 DNA를 채취했다.

그러나 이 정액 DNA 샘플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국과수 요원의 실수로 훼손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5년 국정감사 때 권오을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제기된 이 문제는 샘플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국과수의 반박이 나온 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채 진실게임 속으로 묻혀 버렸다.

경찰은 강호순의 DNA를 밝힐 수 있는 샘플을 국과수에 보내 노 씨 청바지에서 채취한 정액 DNA와 동일한지 여부를 의뢰했지만 아직 아무런 답이 없다고 했다.

국과수가 노 씨 청바지에서 찾아낸 DNA 샘플을 훼손했다면 크나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blog.yonhapnews.co.kr/jeansap

(안산연합뉴스) 박기성 기자 jeansa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