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 구입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산다. 그리고 상품을 구입한 다음 이를 소비해 가면서 상품이 구입하기 전에 알고 있던 그대로인지 확인할 수 있고 아니라면 환불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복용한 알약이 과연 아스피린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소비자는 아무도 없다. 비록 아스피린을 복용했더라도 감기는 더 심해질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라도 감기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중 약국에서는 언제나 아스피린이 팔리고 있다. 의술도 마찬가지다. 환자로서는 의사의 치료가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아프면 의사를 찾게 된다.

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의 내용과 품질을 확인할 수 없다면 가짜가 나타난다. 아스피린인 줄 알았던 알약이 밀가루이거나 횟가루인 경우가 있다. 명의로 소문이 자자하던 의원이 알고 보니 무자격 돌팔이인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가짜라는 사실이 들통 나면 해당 상품은 끝장이고 엉뚱하게 다른 진짜까지 피해를 입는다. 사람들은 멀쩡한 진짜 아스피린까지 한동안 외면한다. 이런 사고가 잦으면 해당 상품 시장 전부가 움츠러든다.

가짜 아스피린을 진짜라고 속여 파는 행동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사취와 다름없이 소비자의 재산권을 유린한다. 피해가 두려운 소비자들이 아스피린의 구매를 꺼리면 아스피린 시장은 존재하기 어렵다.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중국제 분유는 송두리째 시장을 잃고 말았다. 아스피린이나 분유는 모두 민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상품이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 시장이 아예 서지 않는다.

이때 정부가 나서서 의약품과 식품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품질을 보증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수시로 의약품의 성분을 점검해 불량품을 응징하고 압수하는 조치를 철저히 취하면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아스피린을 구입한다. 분유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식품도 다르지 않다. 국가가 정해진 절차를 거쳐 의사에게 자격증을 발급하고 무면허 시술을 단속하는 것도 같은 효과를 거둔다. 이러한 정부 개입의 본질은 결국 재산권 보호다.

위험부담이 본질인 금융상품에는 특히 문제가 많다. 금융자산은 잘 되면 크게 불어나지만 잘 안 되면 폭락한다.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소재가 모호하다는 사실에 편승한 방만함은 투자 위험을 높이고 이에 시세조작까지 가세하면 투자자는 부당하게 큰 손실을 입는다. 이런 일이 팽배하여 누구나 투자를 기피하는 사태가 바로 금융공황이다. 정부는 방만함,부주의 및 사기를 막아 금융시장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각종 건전성 규제를 부과한다.

식약청이 불량한 식약품을 걸러내듯 금융감독원은 키코(KIKO) 같은 불량 금융상품을 걸러내야 한다. 시장경제를 창달하는 지혜를 한마디로 '큰 시장,작은 정부'라고 한다. 정부 개입이 시장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을 건전성 규제까지 철폐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목표가 재산권 보호라면 정부 개입은 클수록 더 좋은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