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기소된 피고인은 유죄 확정

경기 수원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10대 소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노숙자들에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사건 발생 6개월 이상 지나 시작된 재수사로 기소돼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반면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먼저 기소된 남성에게는 이미 유죄가 확정된 상태여서 검찰이 상고하면 뜨거운 법리 논쟁이 예상된다.

이 사건은 2007년 5월 중순 노숙생활을 하던 A(당시 15세)양이 경기 수원의 한 고교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수사당국은 A양이 자기 돈을 훔쳤다고 의심하던 정모 씨에게 맞아 숨진 것으로 결론짓고 상해치사 혐의로 정씨를 기소했으며 정씨는 1심에서 징역 7년,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고 이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던 중 2008년 1월께 검찰은 제보를 받아 재수사에 착수해 정 씨와 어울려 다니던 최모 씨와 10대 노숙 남녀 등 4명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최씨 등은 1심 재판에서 `A양을 때려 숨지게 했다고 자백한 것은 검사의 회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범행을 부인했고 발생한 지 반년 이상 지나 재수사가 시작된 탓에 진술 이외의 별다른 물증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심 재판부는 "사건 발생 당시 머리카락 하나까지 물적 증거를 낱낱이 찾아냈어야 하는데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불완전한 수사를 지적했지만 다른 가담자가 있었다는 진술과 검찰 조사에서 최씨 등이 모두 동일하게 범행을 인정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애초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 유죄 판단했다.

최씨는 징역 4년, 나머지 10대 3명은 징역 단기 2년, 장기 3년을 선고받고 모두 항소했는데 2심은 관련자 진술의 모순점 등을 이유로 1심을 뒤집었다.

서울고법 형사5부(조희대 부장판사)는 22일 최씨 등 4명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중 일부는 나머지 피고인이 이미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오인하고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고, 사건이 발생한 고교에 정문과 후문 중 어느 쪽으로 들어갔는지, 문이 열려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진술이 모순되거나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정씨가 항소한 뒤 `경찰 강요로 거짓진술을 했다'고 부인하면서도 최씨 등과 함께 범행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는데, 이후 최씨 등이 공범이라고 진술한 경위에 대한 해명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에서는 범죄 증거를 검사가 제시해야 하고 피고인의 변명이 불합리해 거짓말 같더라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최씨 등이 A양을 때려 숨지게 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