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시위대 충돌 사망자 발생 사례
과거에도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시위 참가자나 경찰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 다수 있었다.
1989년 동의대 사태 이후 대표적인 사건은 다음과 같다.
▲동의대 진압 전경 7명 사망(1989년) = 5월3일 부산 동의대에서 학생들이 교내 건물을 점거한 채 정권 규탄시위를 벌이면서 시위 진압 경찰을 향해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진압 경찰관 7명이 숨지고 11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시위 참가 학생 71명이 구속기소됐고 수십 명이 방화치사상 등의 혐의로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명지대 강경대 사망(1991년) = 4월27일 학원자주화 투쟁에 가담했다가 강경대(명지대) 군이 서울지방경찰청 4기동대 소속 전경에게 쇠파이프로 집단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서울 서부경찰서장과 현장을 지휘했던 중대장, 소대장 등이 직위 해제되고 폭행에 가담한 경찰관 5명이 구속됐다.
이후 여론이 악화하면서 `사복체포조'에 대한 해체가 검토되기도 했다.
▲성균관대 김귀정 사망(1991년) = 5월25일 `공안통치 노태우 정권 퇴진대회'에 참가했던 김귀정(성균관대) 양이 대한극장 부근에서 거리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을 피해 도망치다 넘어져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연세대 노수석 사망(1996년) = 3월29일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노수석(연세대) 군이 진압경찰에 쫓기던 중 갑자기 쓰러져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부검 결과 외부충격이 아닌 심장질환에 의해 급사로 밝혀졌지만 전국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았으며 정치권에서도 여야 간에 책임 소재를 두고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조선대생 류재을 사망(1997년) = 3월20일 조선대 1·8극장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 주최 개강투쟁선포식에 참가한 류재을(조선대) 군이 행사를 마친 후 가두행진을 하던 중 어딘가에서 날아온 물체에 맞고 사망했다.
이후 경찰과 대책위 측 간에 고인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두고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한총련의 격렬한 시위가 전개됐다.
▲농민 전용철·홍덕표 사망(2005년) = 11월15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 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던 농민 전용철 씨가 경찰 진압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던 도중 같은 달 24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같은 날 시위에 참가했던 농민 홍덕표 씨 역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 같은 해 12월18일 패혈증으로 숨졌다.
이 사건으로 서울경찰청 기동단장(경무관)이 직위 해제되고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 이기묵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이 잇따라 사표를 제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동자 하중근 사망(2006년) = 7월16일 포항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대회'에 참석한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 씨가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 과정에서 머리 등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같은 해 8월1일 숨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경찰 진압대원들이 시위대에게 방패를 세워 공격하거나 소화기를 던지고 진압봉과 방패를 휘둘러 상처를 입히는 등 과잉진압한 점은 인정했지만 경찰 진압과 하씨 사망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는 판단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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