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험에서 떨어졌을 땐 방황도 많이 했죠. 말단 공무원이지만 지금은 만족스럽습니다."

`국내 최고의 학벌'이라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소위 `SKY대' 졸업생들이 하위직 공무원에 몰리고 있다.

이른바 `고시'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던 예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A씨는 지난해 72명을 뽑는 광주시 지방공무원 행정직(9급) 임용시험에서 5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 최근 일선 동사무소로 수습 배치됐다.

A씨는 졸업 후 잠시 몸담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3년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은 `만만하게' 여겼던 첫 시험에서 그는 간발의 차이로 낙방했다.

"솔직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좌절감과 당혹감에 한동안 방황도 했었죠. 지난해 합격했을 때도 점수를 보니 합격자 가운데 평균 아래더군요.

"
현재 A씨는 동사무소 민원대 앞에서 증명서를 떼 주는 일을 배우고 있다.

서울대에서도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대신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선후배와 친구들이 꽤 있다고 A씨는 전했다.

고려대 공대를 졸업한 B씨도 경찰 공무원 시험에 응시, 말단 순경으로 민원실과 방범순찰대에서 근무하다 최근 경장으로 한 계급 승진했다.

주변에서는 `왜 일류대를, 그것도 공과대학을 졸업해 순경으로 왔느냐'는 시선이 적지 않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취업률이 각종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50%를 밑도는 상황에서 SKY 졸업생들의 하위직 공무원 진출이 눈에 띄곤 했다.

특히 취업 시장에 존재하던 학벌의 벽이 점차 낮아지고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처럼 `눈높이'를 낮추는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서울대 경력개발센터 송윤경 전문위원은 "최근 학생들 진로 상담을 해 보니 관심 분야가 다양한 분야로 넓어지는 동시에 눈높이도 함께 낮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A씨와 B씨의 `선배' 격으로 연세대 상경계열을 졸업해 광주 무등산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이상호(43·7급) 씨는 "늦깎이로 9급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했었다"며 "출발선은 다른 동문에 비해 조금 뒤처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위직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뜻을 펼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광주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