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청산·부동산 버블 없어 엔화수요 급증
'연말 1弗=80엔' 예측도 … 정부 시장개입이 변수

세계 주요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독 일본 엔화의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40% 급등했다. 가파른 엔고로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의 수출기업들이 타격을 입자 일본 정부는 2004년 3월 이후 중단했던 외환시장 개입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엔화 가치가 오르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현상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싼 이자의 엔화를 빌려 고수익 외화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되고 있다. 초저금리의 일본을 빠져나가 해외 채권이나 주식 등에 투자됐던 돈들이 일본으로 되돌아 오면서 엔화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엔 일본 엔화가 세계에서 그나마 안전한 통화라는 신뢰가 깔려 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엔화가 신뢰받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일본 국민들은 1400조엔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데다 저축률까지 높다. 둘째 1990년대 워낙 심각한 거품붕괴를 맛봤기 때문에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미국이나 유럽처럼 부동산 버블이 생기지 않았다. 셋째 일본은 대외채무가 거의 없는 나라라는 점이 엔화 강세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국제유가 하락도 엔고를 부추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유가와 엔화 가치는 상관관계가 깊다. 과거 통계를 보면 원유가격과 엔화 가치는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선명하다. 일본의 수입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제 원유 값이 떨어지면 일본은 수입액이 줄어 무역흑자 규모가 늘어난다. 무역흑자가 는다는 건 일본에 달러가 많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상대적인 엔화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반대로 원유가격이 올라가면 일본의 수입액이 늘어 무역수지가 악화된다. 그만큼 일본으로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 엔화 가치는 떨어진다. 실제 1970년대 오일쇼크로 원유값이 급등했을 때 엔화 가치는 급락했다. 최근 엔화 가치 급등은 국제유가 급락의 영향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앞으로 엔화 가치는 어떻게 움직일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고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09년 일본경제 전망'에서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는 2008년 말 대비 10% 정도 더 상승해 올 연말엔 달러당 80엔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엔고가 지속될 경우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세계 동시 불황으로 판매 부진에 애를 먹고 있는 일본 수출기업들은 엔고까지 겹쳐 그야말로 '더블 펀치'를 맞고 있는 형국이어서다.

일본은 가파른 엔고를 막기 위해 작년 말 연 0.3%였던 기준금리를 미국처럼 제로(0)수준인 0.1%로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고가 멈추지 않는다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것이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지난해 말 기자회견에서 "엔화 가치 추이를 지켜보면서 외환시장 개입을 포함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3월 이후 외환시장에 개입해 오지 않던 일본 정부가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건 이례적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일본 간에 '통화 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