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온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운이 좋았지요 뭐."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신헌철 SK㈜ 부회장 등 국내 대표기업들의 CEO도 예외가 아니다.

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일까. 조직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 하는 선택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나마 직급이 낮을 때는 다른 사람이 해놓은 선택이나 결정을 쫓아가기 십상이다. 사전 예고없이 발표되는 인사발령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가끔씩 찾아오는 회사 특명에 갖은 수고와 스트레스를 바치는 일상이 되풀이 됐을 뿐인데,어느새 임원이 되고 사장이 돼있더라는 식의 얘기다.



▶▶경영자들은 의외로 잡동사니 정보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CEO가 되고나면 그럴 듯한 선택을 하는 걸까. 경영전략가로 이름난 헨리 민츠버그 교수(캐나다 맥길대)는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저명한 CEO들의 행동패턴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경영자들은 하루 8시간의 업무시간 동안 총 583가지 잡다한 활동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심사숙고나 체계적인 활동반경과는 거리가 먼 행태였다는 것이다.

경영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또한 기업 내의 공식화된 정보시스템보다는 구두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는 비율이 80%에 가까웠다.

여기에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치밀한 분석이 아니라 마음 속의 잡동사니 정보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민츠버그 교수는 주장했다. 한마디로 CEO들의 일상이나 행태가 범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츠버그 교수가 경영자들의 전략적 사고나 세련된 경영 솜씨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런 조사에 착수한 것은 의사결정이나 중요한 선택을 수반하는 경영행위가 사소한 이유나 동기에 적잖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영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총체적인 행위'라고 규정한다면 민츠버그 교수의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척 크다. 인간의 선택은 중요한 정보보다는 하찮은 잡정보에 의해 이뤄질 때가 많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있는 고객들 또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美 월트 디즈니가 유럽에서 실패한 건 잘못된 선택 때문

개인적으로도 우리는 살면서 많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지만 매 단계마다 심각한 고민과 꼼꼼한 준비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 전공을 선택하고 군 입대 시기와 직장을 결정하는 일,배우자를 만나는 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로 잰듯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겠는가.

앞서 CEO들이 얘기한대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 운명론에 빠졌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이 세상의 네트워크가 빛의 속도로 빠르게 연결되고 해체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어차피 100% 완벽한 정보라는 것은 없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는 것이고,만약 이도 저도 아닌 딜레마에 봉착한다면 그냥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과 의사결정의 성격이 이러하다면 고객을 상대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조직 역시 고객들의 특성,아주 사소한 특성까지 파악하는 세심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요즘 CEO들이 심리학자들을 자주 만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 이어 일본시장까지 석권한 월트 디즈니가 1990년대 초 유럽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유럽인들의 사소한 습관을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는 1992년 프랑스에 파리시 규모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은 부지에 '유로 디즈니'를 세웠다. 대규모 식당과 호텔을 갖춘 초호화판 놀이공원이었다. 디즈니 측은 실패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장 첫해 유로디즈니는 무려 10억달러의 손실을 내며 무너졌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지적됐지만 '의미있는' 이유는 와인이었다. 유로디즈니는 시설 내 일체의 주류판매를 금지해버렸다. 이것이 프랑스인을 비롯한 와인애호가들의 반발을 불렀다. 미국에 있는 시설을 그대로 옮겨오기만 하면 떼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는 현지 식생활에 대한 무시 때문에 완전히 물거품이 돼버렸다.



▶▶Top down과 Bottom up을 조화시켜라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소한 동기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개별 행위들마다 '그전에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조금 변화를 주고 싶어서''그냥 좋아서' 등과 같은 무척 다양하고 천차만별인 이유들이 따라붙는다. 조직을 관리하는 이들은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이런 사소함들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톱 다운(Top down)'과 '바텀 업(Bottom up)'을 조화시킬 수 있다. 톱 다운식 혁신은 전사적으로 진행되지만 단절적이기 쉽다. 따라서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점진적 상승효과가 있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인 것이다.

과거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이 생일을 맞은 직원들을 자신의 방에 불러 같이 기념사진을 찍은 것은 (본인의 의도 여부에 관계없이) '사소함'을 매개로 한 새로운 소통방식이었을 게다.

혹시 아는가. 그런 사소한 호의에 이끌려 그곳을 평생직장이라고 마음 속 깊이 못박은 이들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