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의 대형공사 외압 의혹의 핵심 관련자인 홍경태(53) 전 청와대 총무행정관이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됨에 따라 수사 차질이 예상된다.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홍씨가 지난 23일 오후 6시 20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출국한 사실을 나흘 뒤인 27일 확인하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홍씨는 건설사-청와대의 브로커 서모(55.구속)씨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서씨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관련자들 중 가장 먼저 범죄 정황이 드러나 `고위층 빙자' 사기에 대한 수사가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확대되도록 한 장본인이다.

토목 전문건설사 S업체가 2005년 부산 신항만 공사와 2006년 영덕-오산간 도로공사에서 일부 공사를 하청을 받도록 해달라고 서씨가 대우건설과 한국토지공사 관계자들에게 청탁하는 과정에서 홍씨는 만남을 주선하거나 전화로 압박을 가한 것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씨는 영덕-오산간 도로공사 부정입찰 의혹의 다른 핵심 피의자인 정상문(62)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서씨를 연결하는 고리로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최근 대우건설과 토공 관계자들로부터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잇따라 확보하며 속도를 붙이던 경찰 수사가 제동이 걸릴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홍씨에 대한 직접 조사가 이뤄질 수 없어 당장 핵심에 접근하는 게 불가능해졌으며 홍씨의 신병이 나중에 확보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를 인멸한 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곱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20일 체포한 서씨로부터 홍씨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진술을 확보함에 따라 21일과 22일 홍씨와 접촉했으나 결과적으로 소환 통보와 동시에 출국금지를 요청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홍씨가 21일 통화에서는 매우 신사적인 태도로 `곧 출석하겠다'고 답했고 22일에는 전화를 잘 받지 않다가 `월요일(25일)에 가겠다'고 약속해 기다렸다"며 "그 뒤로 전화를 받지 않고 25일에 출두하지도 않아 출금했는데 전산입력 지연으로 출국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경찰이 핵심관련자인 홍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도 않은채 섣불리 출석을 통보해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오히려 그가 도주하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홍씨가 예민한 시기에 경찰을 거짓말로 따돌리고 예정에도 없이 출국한 것은 그간 정황 수준이던 혐의 사실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의혹에 신빙성을 보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전날 홍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홍씨의 신병 확보에 나섰던 경찰은 짐짓 당혹감을 감추면서 정 전 비서관 등 다른 피의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와 통화내역 및 계좌추적, 관련 자료 분석으로 물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