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 보고 없었다" → "보고는 됐지만 지시는 아니다"
에버랜드 CB발행 그룹 지시 여부 공방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의혹과 관련해 삼성 측이 특검 수사를 받는 동안 내부 토의를 거쳐 그룹 비서실에 사전 보고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삼성 측은 "CB발행 계획은 에버랜드가 독자적으로 수립했고 비서실에는 문제점이 없는지 점검하기 위해 보고한 것"이라면서 비서실의 `지시'로 CB 발행이 이뤄졌다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논리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으로 이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된 유석렬 삼성카드 대표이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 심리로 20일 열린 세번째 `삼성재판'에서 "이 전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없다가 3월18일에 처음으로 그런 내용을 적은 진술서를 냈는데 계기가 있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내부 토의를 했고 이 회장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유 대표는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 여론의 동향을 봤을 때 과거처럼 진술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12년간 삼성의 발목을 잡아온 에버랜드 사건을 특검을 계기로 털고 가자는 내부의견도 있었다"며 "이학수 전 부회장 및 김인주 전 사장과 내부 토의를 했고 회장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토의는 진술서를 제출하기 이틀 전쯤 이뤄졌다.

그동안 수비적으로 진술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 대표는 에버랜드 CB발행 계획이 이사회 결의 이전 비서실에 보고된 과정을 `지시'가 아닌 `협의'라 주장하면서 비서실이 주도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삼성 측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삼성 계열사인 에버랜드 주주들의 실권이 예정돼 있었던 것 아니냐"는 특검의 신문에 "결정 권한은 각 회사에 있었다"고 답했다.

김인주 전 사장도 이 전 회장의 에버랜드 CB 실권분을 이재용 남매가 인수하도록 한 사실이 이 전 회장까지 보고됐다고 증언했지만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대량 실권'이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검은 앞서 에버랜드 법인주주였던 중앙일보의 자금담당자 임모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1996년말 에버랜드 CB의 인수권을 포기한 경위와 같은 시기에 중앙일보가 유사한 방식으로 CB를 발행한 과정을 집중 신문했다.

특검팀은 지난 공판 때 재판부가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에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를 증거조사하겠다며 자료 제출을 요구한 데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소할 생각도 없고 양형자료로 삼을 생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 중 채택을 보류했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했으며 이재용씨의 경우는 24일로 예정된 다음 공판에서 채택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또 `삼성 사건'의 고발인인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와 김상조 상명대 교수가 응할 경우 이 전 회장 등의 양형을 위한 증인으로 직권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에서는 특검보들이 증인 신문을 한 뒤 조준웅 특검이 추가 신문을 요청해 중복되는 질문을 하는 일이 빈번해 재판부가 조 특검에게 "증인이 이미 주신문에서 상세하게 답변했으니 요지를 정리해 신문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의 변호인도 재판 말미에 "이 전 회장이 각성제를 복용하면서까지 재판에 임하고 있다"며 신속한 진행을 요청했다.

조 특검은 재판이 끝난 후 "재판장은 절차만 진행해야 하는데 재판장이 판단한 내용에 (재판이) 맞춰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이세원 기자 nari@yna.co.kr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