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세의 남자 아이가 유치원에서 툭하면 친구를 때리고 선생님에게 대든다.이런 사실을 전해 듣고 부모가 야단치면 장난감을 집어던지며 화풀이한다.어른을 무서워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떼를 쓰며 꼬박꼬박 말대꾸까지 한다.이처럼 되바라진 반항장애 어린이가 주위에 있다면 소아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한술 더 떠 초등학생이 기물을 파손하고 집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밤 12시가 되도록 귀가하지 않는다면 품행(행실)장애가 아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주의가 산만하고 안절부절못해 '공부를 못하게 되는' 어린이 질환이지만 환자의 80% 이상이 비교적 쉽게 치료되므로 그리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이에 비해 ADHD에 같이 묻혀 있거나 별도로 나타나는 반항장애,품행장애는 약물로 치료가 어렵고 가벼이 여기다 치료 적기를 놓치기 쉽다.이들 행동장애 어린이는 장차 성인이 돼서 범죄를 저지르거나,외톨이가 돼 우울 또는 불안에 빠지게 된다.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쫓겨나거나,배우자를 얻지 못하거나 또는 일찍 이혼하는 등의 문제를 겪게 되므로 조기 발견해 치료해야 한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ADHD 어린이 중 ADHD만 갖고 있는 경우는 31%에 불과하고 40%는 반항장애,14%는 품행장애를 동반하는 등 다양한 소아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국내에서는 지난해 4월 서울시학교보건진흥원이 조사한 결과 전체 어린이의 11.34%가 반항장애,1.12%가 품행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항장애는 부모 선생님 등 권위있는 인물에 대해 반복적으로 거부 도전 불복종하고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어른에게 버럭 화를 내고 항시 논쟁하려 들며 어른의 요구,규칙을 무시하거나 거절한다면 반항장애의 징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품행장애는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고 나이에 맞는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을 반복적·지속적으로 위반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예컨대 폭력 파괴 사기 도둑질 무단결석 가출 등의 심각한 문제행동을 야기해 다른 사람에게 적잖은 괴로움을 끼치는 것이다.

이들 행동장애는 유전적 또는 후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부모나 형제 등 가족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으면 아이의 30% 이상이 같은 문제를 겪게 된다고 연구돼 있다.유전 측면에서 수면ㆍ행동ㆍ정서조절과 관련된 대뇌 전전두엽피질과 행복감에 관여하는 선조체 등이 구조적으로 위축됐거나 기능이 저하됐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또 감염 외상 임신 출산 등에 의해 뇌가 미세한 손상을 입었거나 합병증이 생겼을 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더불어 부모의 잘못된 양육 환경이나 방식이 문제행동을 낳는다.아이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거나, 부모의 가치관이 수시로 바뀌거나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설명은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교육하는 방식은 아이들에게 무력감 좌절 분노를 유발해 비뚤어진 행동을 일삼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대해 대체로 커가면서 있을 수 있는 사건이라며 간과하거나 반대로 아이를 강하게 다그친다.그러나 이런 방치나 강압은 정답이 아니다.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부모가 감정에 치우치거나 지나치게 강한 체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넣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바람직한 행동양식에 대한 당위성을 자상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정신과에서 부모훈련과 가족치료를 통해 부모가 가져야 할 소양을 함양하고 가족 전체가 아이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아이를 지지해 주는 방법을 익히면 매우 효과적이다.학교에서 선생님이 흥미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이를 학습활동에서 잠시 격리시키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약물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그래서 부모를 포함한 가족의 인식과 행동변화가 더욱 중요하다.특히 품행장애는 반항장애보다 몇 곱절 치료가 어려우며 이런 장애에 불안증 우울증 조증 틱장애 야뇨증 등이 겹친다면 더욱 난치성이 되기 때문에 신속하고 체계적인 치료가 요구된다./유한익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