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변호사 동원하고 변론기법도 공부하고­…

"'살인의 추억' 보셨지요?"

홍명기 변호사가 뜬금없이 영화얘기를 꺼냈다. 배심원을 향해 자세를 고쳐잡은 홍 변호사의 목소리에는 최후진술에 마지막 혼신의 힘을 싣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정신지체장애아를 범인으로 몰아간 영화와 마찬가지로 검찰이 이 피고인을 유도심문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흔들리는 눈을 보며 홍 변호사는 다시한번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휘저었다. "실형을 받으면 피고인은 쇠창살 사이에서 마평 언덕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될 것입니다."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 벌어진 국민참여재판의 한 장면이다. 일반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ㆍ무죄와 형량을 가리는 국민참여재판이 올해부터 본격 도입되면서 법정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어려운 법률용어가 사라지고 검사들의 말투가 공손해지고….

그 중에서도 빼어난 용모와 화려한 말솜씨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타변호사'가 등장하게 된 것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지난 12일 대구지법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국선변호인인 전정호 변호사가 강도상해 피고인의 집행유예를 이끌어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무래도 스타변호사는 대형로펌에 밀집될 수밖에 없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백창훈 변호사는 '역전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항소심에서 뒤집는 등 경쟁 로펌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파트너로 낙인 찍혀있다. 같은 법률사무소 신필종 변호사는 현대자동차 분식회계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 등을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확한 발음과 단정한 말투,시종일관 공손한 서구식 '공판 매너'는 배심재판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친근한 외모와 달변으로 소문난 태평양 강동욱 변호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송전문 변호사들이 마련한 '변론학교(Trial Academy)' 관련 세미나에도 참석할 정도로 배심재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뛰어나다.

광장의 고원석 변호사와 이완식 변호사도 배심재판의 '히어로'를 꿈꾸고 있다.광장은 배심재판에 대비해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세종은 임준호 변호사와 박교선 변호사가 국민참여재판을 전담할 방침이다. 임 변호사는 현대엘리베이터 동아제약 등 소송당사자들이 첨예하게 맞붙는 경영권 분쟁에서도 대부분 승소하는 등 설득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박 변호사는 배심재판의 원조격인 미국의 모리슨 앤 포에스터 등 대형로펌에서 1년간 연수하는 등 경험이 풍부하며 지난해 '담배소송'에서 KT&G 측에 승리를 안겨줬다.

법무법인 화우는 백지연 전 아나운서를 초빙해 소속 변호사를 상대로 구술 변론 기법 및 자세에 관한 강의를 가졌다. 화우의 이선애 변호사는 김태환 제주지사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참여,1시간 남짓한 구두변론 끝에 대법관 전원의 찬성의견으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중견로펌들도 배심재판 사건 수임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법무법인 충정은 2000년 말 대우자동차 회사정리사건을 수임해 국내 최대규모 기업의 회생절차를 최단기간 내에 처리했다는 기록을 보유한 최우영 변호사를 배심재판 전담으로 배치했다.

서정은 미국식 재판제도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유성훈 변호사를 내세우고 있으며,소송부문에서 대형로펌과 맞먹는 승소율을 자랑하는 한승의 경우 판사출신인 박영화 변호사와 임정수 변호사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스타 등극'을 장담하고 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