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熙秀 <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

1970년대 초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근대화된 국가였다.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의 사용을 금지하고,공공기관에서의 양복 착용을 허용했으며,아시아권 최고의 여성 취업률과 교육 수준을 보여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사던 나라였다.

그러나 1973년 왕정(王政)을 무너뜨린 군사쿠데타로 아프가니스탄은 혼란과 군벌 독재의 혹독한 시대를 겪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9년에는 구(舊)소련의 침공을 받아 9년간이나 전쟁을 치렀고,그 후 8년간의 끈질긴 내전 끝에 탈레반 정권이 겨우 들어섰지만 극단적 이슬람 율법으로 국민들의 숨통을 조였다.

9·11 테러를 배후 조종한 오사마 빈 라덴을 끝까지 보호해주다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붕괴된 탈레반 정권은 6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이 지난 주말 한국인 봉사자 23명을 백주대낮에 납치를 해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초기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감된 탈레반 일당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알려지는 등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정황이다.

이에 앞서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인 2명의 생사도 불투명하다.

철군과 협상을 거부하는 독일 총리의 담화가 나오기 무섭게 본보기로 무참히 살해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아프간 정부에서는 이를 부인한 상태다.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알려진 탈레반은 납치를 통해 무엇을 노리는 걸까.

우선 탈레반은 미국과 나토 동맹군을 위시해 모든 외국 군대의 아프간 철수를 노린다.

탈레반 붕괴 이후 들어선 아프가니스탄 중앙정부 집권 5년 동안 치안과 주민들의 삶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탈레반 잔당(殘黨)을 궤멸한다며 퍼붓는 무차별 공습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일상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게 아프간의 현실이다.

탈레반 시절 희생된 민간인 숫자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탈레반과 같은 파슈툰 부족이 거주하는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탈레반에 대한 지지와 협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중심으로 작년 3월 이후 외국군 철수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관련 국가 외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하고 있다.

외국 군대가 철수하면 허약한 중앙정부를 무너뜨리고 재집권할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 때문이다.

둘째는 2단계 실용적 전략으로 외국인 인질과 수감된 탈레반 지도자들과의 맞교환을 노린다.

이미 탈레반은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를 풀어주면서,탈레반 재소자 5명을 넘겨받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셋째는 협상과정의 은밀함 때문에 표면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상당한 금전적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

양귀비 생산과 마약 밀매로 확보되는 불법자금만으로는 무기를 구입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사태에는 납치된 한국인 선교(宣敎) 봉사단원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다른 종교를 강요하는 선교가 이슬람 율법은 물론 일반 세속법으로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인도주의적인 봉사가 목적이었다지만,현지인들이 보기에는 선교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할 만하다.

피랍 지역인 가즈니 주의 정부 책임자가 전시(戰時) 지역에서 한국인들의 대규모 활동 자체가 위험한 것으로 이미 경고했고,탈레반 측이 한국인 선교를 범법행위로 간주하는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의 종교적 가치와 문화에 대한 최소한 존중과 예의,종교를 뛰어넘는 순수한 인도주의적인 봉사야말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상대는 과격한 이슬람 급진 조직이고,그 나라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전쟁 지역이다.

보다 냉철한 접근으로 선교와 봉사를 자제하고,또 다른 비극을 막아야 한다.

우선은 우리 봉사단원들이 무사하기만을 기원한다.